미국 최초의 2차대전 에이스(6) Air Combat Stories


  미국의 육군 항공대로 전출된 저자는 1944년 제406전투전대 소속으로 다시 영국에 배치되었습니다.



 제406전투전대의 첫 전투는 그로세타 대령의 선도로 시작됐다. 그 날은 전대 전체가 출격했다. 자신의 전투기를 타고 이륙 준비를 하는 동안 그는 스로틀을 열며 말했다. "간다, 제군들! 용기가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걸 잊지 마라!" 한 시간 후 우리는 첫 번째 조종사를 전투에서 잃게 된다. 빌 "그린 호넷" 메리엄 소령은 우리 전대의 고참 작전 장교였다. 우리는 프랑스 북부로 날아갔다. 우리의 임무는 독일 비행장에 대한 급강하 폭격과 기총소사였다. 그 비행장에는 소형, 중형, 대형 모든 종류의 대공포가 있었다. 네 기의 저그로 구성된 편대의 첫 분대가 12,000 피트에서 강하하기 시작하자 독일군은 모든 것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분대장인 메리엄은 무전으로 외쳤다: "그린 호넷이 간다!" 그는 대공 포화 속으로 돌진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내 임무는 적 비행장 상공에서 선회하며 타격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내 저그의 동체 아래에는 신형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메리엄이 500 파운드 RDX 폭탄을 투하한 순간 다수의 40 mm 포탄이 엔진에 맞았다. 그의 P-47에서 연기와 기름이 흘러 나오더니 곧 불타기 시작했다. 그는 당겨 올린 후 동체 착륙할 장소를 찾았다. 이미 탈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메리엄의 목소리가 다시 우리의 무전기에 울렸다. "안녕이다, 제군들. 난 포로가 될 거야. 나중에 보자." 메리엄의 저그는 착지한 후 먼지와 연기를 날리며 들판을 가로 질렀다. 그리고 불꽃을 일으키며 터졌다. 그린 호넷은 탈출하지 못했다.
 우리는 독일 비행장을 계속 공습했고 그것은 사실상 잔해 더미가 됐다. 불타는 건물, 연료 저장소, 파괴된 항공기, 폭발하는 탄약고에서 치솟는 연기 기둥은 우리가 안겨준 패배를 보여줬다. 기지 주변에 분산되어 있거나 모래 주머니 엄호체에 있던 비행기들은 30~40대가 파괴됐다. 공습이 끝났을 때는 기지가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우리는 애쉬포드의 기지로 돌아왔다. 리틀튼 C. 셀든 소령이 빌 메이엄을 대신해서 전대 작전 장교가 됐다.
 전대는 하루에 최소 두 번씩 출격했고 어떤 때는 세 번이나 나갔다. 조종사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각 임무는 평균 3시간이 걸렸고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의 표적을 타격했다. 급강하 폭격을 좋아하는 조종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선더볼트 조종사에게는 특별한 표적이 주어지는 듯 했다. 철도 조차장, 비행장, 통신소, 공장, 중요 교량 등 엄중히 방어된 표적은 우리 몫이었다. 운용 개념은 간단했다. 직렬 엔진 전투기는 중화기의 대공 사격을 견디지 못한다. 거대한 88mm 대공포, 400mm 속사포 "시카고 피아노", 2 mm 와 7.9mm 경대공포 등. 그런 전투기는 냉각 계통에 단 한 발이라도 맞아도 죽은 오리 신세가 됐다. 그러나 육중한 주철 같은 저그는 이 모든 것을 견뎌냈다. P-47이 사실상 산산조각난 채 귀환하는 광경을 본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실린더는 엔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오일이 흘러나오고 날개, 동체, 꼬리 날개까지 찢기고 구멍이 뚫린 채로 착륙한다. 이 기체들 중 상당수가 조종사를 무사히 기지로 데려다 준 후 폐기됐다.
 무장 정찰은 저그 조종사에게 더 잘 어울렸다. 우리는 이런 임무를 횡재 표적이라고 불렀다. 적지에서의 철도 사냥은 가장 짜릿했다. 열차를 공격할 때는 이동 방향에서 약 30도 각도로 강하한다. 이렇게 하면 독일군 기총 사수는 편차 사격을 해야 하고 대부분 빗나가게 된다. 그리고 기관차에 8정의 기관총으로 API(철갑소이탄)을 날려 준다. 보일러에 제대로 맞추면 하얀 증기와 연기와 간혈천처럼 솟아 나온다. 이제 열차는 멈춰 서게 되고 마음대로 두들겨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탄약을 수송 중이라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열차에 사격한 후 기체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나 자신까지 날려 버릴 수 있다. 우리 406전대의 한 친구는 그런 폭발이 일어난 후 파편에 뒤덮였다. 88mm 탄피 하나가 오른쪽 날개의 앞전에 부딪혀서 그대로 거기에 박혀 버렸다.
 적 비행장을 공격할 때도 묵은 아드레날린이 흘러 넘쳤다. 그런 표적에는 항상 크고 작은 대공포가 둘러쳐 있었고 낮게 날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포화 세례를 받았다. 거기다 적 기체나 연료 저장소가 폭발할 위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커다랗고 붉은 불꽃이 얼굴 바로 앞에 피어 오르고 너무 낮고 가까운 상태라 그 속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튼튼하고 믿음직한 저그는 대게 살아남았다.
 나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총 12개 정도의 비행장 공습에 참가했고 대공포와 총알 세례도 그 만큼 받았다. (나는 12기의 적기를 지상에서 파괴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 외에도 다수의 기체에 손상을 주었다.) 우리는 D-데이 전까지(역사가들이 유럽 항공전이라 부르는 시기)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수많은 전우를 잃었다. 그러나 독일은 공군의 대부분을 잃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독일 대공포 사수와 맞짱 뜨지 않는 것이다. 한 표적에 두 번 다시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빠져 나가야 한다. 파편이나 총탄이 내 기체에 박히는 소리는 들을 때 마다 나는 지금 선더볼트에 타고 있음을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D- 데이 이전까지 폭격기 호위는 9공군보다 8공군이 도맡아온 임무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8공군 조종사의 짐을 나눠지게 됐다. 폭격기의 진로를 따라 선더볼트와 무스탕의 호위 구간이 설정 되었고 전투기의 복잡한 시간표 덕에 폭격기들은 독일 내륙의 표적까지 갔다 올 동안 계속 호위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얘기해두자면 우리는 한번의 비행으로 세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많았다. 독일로 가는 폭격기를 호위하다가 다른 호위기들이 우리와 교대하면 기계획된 표적을 급강하 폭격한다. 그러고 나면 독일 땅을 벗어날 때까지 무장정찰을 실시하고 영국의 기지로 귀환한다. 이런 작전에서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참모들이 한 번의 출격을 3소티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즉 100회 출격을 달성하기 위해 300소티를 완수해야 한다.
 폭격기 호위 임무에서는 적의 대공포나 전투기보다도 훨씬 위험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군 폭격기의 기총 사수들이다. 누군가 그들에게 항공기 식별을 가르치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방아쇠 당기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날아다니는 것이라면 뭐든지 사격했다. 물론 먼 거리에서 정면으로 보면 성형엔진 때문에 포케-불프 190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기수가 폭격기를 향하지 않게 하려고 주의했다. 거리를 안전하게 띄우고 평행하게 비행하며 날개를 들어서 국적 표지를 폭격기 승무원에게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50 구경 예광탄이 우리 쪽으로 날아 왔다. 실제로 우리는 몇 기를 아군 사수들에게 잃었다.
 기총 사수들은 내게 불쾌감을 안겨 줬다. 운좋은 하나가 독일 전투기에 몇 발 맞추면 15명의 사수들이 같은 표적을 조준한다. 그리고 그 불운한 독일기를 모두 자신이 격추했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Me.109는 우리 폭격기에 사격을 가하고 나서 대게 하프 롤을 실시한 후 스필릿-S로 이탈한다. 이 때 출력을 최대로 올릴 것이고 109에서는 당연히 검은 연기가 흘러 나온다. 그러나 놀랄만큼 많은 수의 기총 사수들이 그 기체를 격추했다고 주장한다.
 1944년 초의 일이었다. 캐나다 공군의 B-25 한 대가 적 전투기의 공격을 받았다. 그 폭격기는 겨우 날고 있었고 동체와 포탑은 엔진에서 나온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 P-47 조종사 중 한 명이 기지까지 호위하기 위해 폭격기와 나란히 비행했다. 폭격기의 사수는 50 피트 거리에서 제멋대로 기관총을 갈겨 댔고 우리 영웅의 저그에는 동체 측면을 따라 구멍이 뚫렸다. 그는 뒤로 물러났지만 B-25가 안전하게 착륙할 때까지 따라갔고 자신도 착륙했다. 이 혈기왕성한 전투 조종사는 사수의 면상을 한 방 날릴 생각으로 조종석에서 내렸다. 캐나다 사수도 B-25에서 나왔다. 그는 8피트나 되는 장대 같은 키에 어깨도 떡 벌어지고 주먹은 해머 같았다. 그는 곧 포탑이 오일로 덮여서 P-47을 구별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고 한 잔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동맹은 유지됐다.
 내가 왜 기총 사수 얘기를 하고 있지? 아, 폭격기 호위 얘기하고 있었지. 우리가 운이 좋고 원거리 호위를 담당하게 된다면 적기와 만날 기회가 생긴다. 재수가 없어서 근거리에 배치되면(북해를 건너고 네덜란드 상공을 비행한 후 독일 국경에서 끝난다) 급강하 폭격과 무장정찰에 쳐넣어진다.
 1944년 5월 513비행대대와 514비행대대의 지휘관이 작전 중 사망했다. 513비행대대장인 고든 파울러 소령은 프랑스에 무장정찰 임무 수행 중 지상 표적에 기총 소사를 가하다 격추됐다. 그의 P-47은 동체 착륙했고 다른 조종사는 그가 부상입지 않고 기체에서 탈출하는 것을 목격했다. 독일군이 발표한 포로 명단에 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몇 달 후 우리는 자유 프랑스의 정보를 통해 그의 최후를 알게 됐다. 파울러가 탈출한 직후 독일군이 그를 포획하려 했다. 파울러는 콜트 45 자동식 권총을 뽑아 들고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는 여러 차례 총상을 입고 대검에 수도 없이 찔린 후 죽었다. 용맹한 역전의 비행사 파울러 소령은 압도적인 수의 적에 둘러싸인 채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
 514비행대대장인 진 L. 아스 소령은 프랑스 북부에서 독일의 탄약 수송 열차를 공격하던 중 최후를 맞이했다. 기관차에 길게 점사를 가하자 보일러가 터졌고 수증기가 높이 치솟았다. 기차가 완전히 멈춘 상황에서 그는 화물칸을 차례차례 조직적으로 격파해 나갔다. 아스의 50 구경 총탄이 쏟아질 때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두 차례의 공격까지는 순조로웠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각 열차의 끝에는 궤도차 대공포가 연결되어 있었고 독일에서 가장 우수한 대공포 사수가 탑승하고 있었다. 아스 소령은 그들과 정면 대결을 시작했고 이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었다. 두 번째 공격부터는 전투기의 진로를 예측하기가 쉬워진다. 그의 저그는 여러 번 강타당했고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그의 기체는 지면으로 수직으로 떨어진 후 불길에 싸였다.
 512비행대대장인 존 L. 로크 소령은 전대의 모든 전투 작전에서 살아남았고 약 1년 후 진급해서 406전대를 지휘했다. 그는 나중에 미국공군의 장성이 되었다.
 아 스가 죽은 지 며칠 후 어느 젊은 중위도 전사했다. 우리는 프랑스의 조차장을 급강하 폭격하고 있었고 역시 대공포화는 격렬하고 정밀했다. 허약하고 헐떡거리는 목소리가 무전으로 흘러 나왔다. "포탄이 배에 맞았어. 창자가 사방에 흘러나왔어. 난 갈 거야." 갑자기 교신이 끊긴 후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그의 저그는 거의 수직으로 급강하했고 지면을 향해 최대 출력으로 내리 꽂혔다. 그는 독일군의 대공 포대 한가운데서 폭발했다! 중위는 격추됐다. 그러나 최소한 2문의 88mm 포와 스무 명의 깍두기를 길동무로 삼았다.
 내가 유럽의 전장을 떠나 있던 1942~43년 사이 독일은 향상된 Me.109와 신형기인 Focke-Wulf 190을 실전배치했다. 구형인 Me.109E와 109F의 일부를 대신해서 Me.109G가 전투에 사용됐다. G형은 더 강력한 엔진과 화력을 갖췄고 상승속도와 상승한도도 더 우수했다. Me.109의 기본적인 기체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F와 G형은 날개 끝이 각지지 않고 둥글었다. 꼬리 날개를 지탱하는 외부 구조물도 없고 프로펠러 스피너는 더 커졌다.



  
       EB102pic_front.jpg

                                                                              [Me-109G]



 신형기인 FW.190은 독일어로 "Wüger"로 불렸는데 이는 "도살새"라는 의미였다. BMW의 성형엔진을 장착한 이 기체는 확실히 109보다 컸다. 엔진 카울링 상부에는 두 정의 13mm 기관총이 있고 날개에는 총 4문의 200mm 기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속도는 109보다 50mph 정도 빨랐다. 우리가 만난 FW.190에는 두 가지 형이 있었다. 당시 우리는 독일의 세부 명칭을 몰랐기 때문에 단지 "짧은 코"와 "긴 코"로 불렀다. (정확한 모델명은 FW.190A와 190D였다.)

 



       stoffwd9.jpg

                                                                              [FW-190A]


 독일군은 매우 향상된 신형기를 운용하고 있었던 반면 비행 기술은 좋지 않았다. 내가 참전한 첫 해에 비해 적 조종사들의 기량은 현저히 떨어진 듯 했다. 그들 중 일부는 꼬리를 잡혀도 회피 기동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총탄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기동은 격렬하 지 않았고 손쉽게 후방에 자리잡은 채 불덩이로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우수한 기체를 그런 형편없는 조종사에게 맡겨 소모시키는 일은 적이라 해도 용납하기 힘들었다. 물론 경험 많은 전투 지휘관들은 여전히 무서운 적수였다. 나는 그들 중 대부분이 전쟁에서 살아 남았을 것으로 믿는다. 1944년 중반이 되기 전에 적의 우수한 전투 조종사들은 소진되기 시작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신참 조종사들은 공중전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D-데이 이전 유럽 항공전이라 불리는 기간 동안 나는 6번에 걸쳐 FW.190과 싸웠다. 나는 저그로 190과 대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속도, 선회반경, 하강속도, 상승속도 어느 것도 밀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내가 격추한 FW.190 두 대는 "비확증"으로 처리됐고 세 번째 FW.190은 "미확인"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격추된 걸 알고 있다. 건카메라에도 제대로 찍혔다. 그런데도 가끔 그런 일이 생긴다.
 독일 조종사들의 격감한 기량에 대해 한 가지 사례를 보여 주겠다. 날씨가 좋지 않은 어느 날 우리 전대는 프랑스-벨기에 국경 지대에서 40여대의 Me.109F 및 Me.109G와 전투를 벌였다. 14,000 피트에 걸린 두꺼운 구름의 바로 아래에서 적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아직 발각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덮쳐서 한 기의 손실도 없이 11대를 격추했다. 이 전투 이 후 나는 우리의 기량이 적보다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드디어 유럽 하늘의 제공권을 차지한 것이다. 나는 독일의 신참 조종사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나중에 전직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 시기의 어린 조종사들은 전투에서 대게 1주일이나 열흘 밖에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Dunn, William R, Fighter Pilot : the First American Ace of World War II, 119-125

 

Tag :

Leave Comments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회원 가입후에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