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선의 라이트닝 (4) Air Combat Stories

 그러나 나는 한 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유인즉 제5 공군의 제5 전투기 사령부는 우리 비행대대의 장비를 신형기인 리퍼블릭 P-47 단발 전투기로 교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그 결정에 반발했다. 우리는 모두 쌍발 전투기 조종사였고 계속 그대로 남고 싶었다. 뉴 기니의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 떠 도는 말이 있었다: "일단 랜딩 기어를 올리고 나면 다시 내릴 때까지 죽은 목숨이다." 정글 속에 추락하면 악어, 식인종, 모기의 표적이 됐다. 비스마르크 해에 떨어지면 상어가 그 일을 대신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펠러 두 개가 하나보다 낫다." 라는 이론을 따랐다.
 그러나 사령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저그(Jug)로 기종 전환했다. 그것이 P-47의 애정 어린 별칭이었다. 우리는 또한 그 비행기를 "궁둥이 큰 새"로 불렀는데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실제로 크고 튼튼했기 때문이다. 또 그 비행기는 8정의 50 구경 기관총을 탑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펠러가 하나 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 점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5 전투기 사령부는 닐 커비 대령을 파견해서 저그가 P-38만큼 좋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결국 커비는 자신의 P-47을 타고 나갔고 한 번의 출격으로 6대의 제로를 격추함으로써 그 점을 증명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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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47 Thunderbolt. 2차 대전 전투기 중 튼튼한 방어력과 강력한 화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투기 사령부는 우리를 마컴 계곡으로 이동 시켰고 거기서 두 달 동안 밀크 런1 초계만 수행했다. 우리는 이 큰 비행기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빨리 보고 싶었고 제로와의 첫 대면을 고대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간 동안 적기를 거의 보지 못했다.
 P- 47을 운용하는 동안 공중전이 몇 차례 일어나긴 했고 그 비행기는 제대로 일해 줬다. 또한 나는 그 전투들 중 미확인 격추를 한차례 기록했다. 8정의 50 구경 기관총에 피격된 제로에서 커다란 파편이 튀어 나오는 장면이 내 건 카메라에 찍혔다. 그러나 끝장을 보기 전에 그의 윙맨이 뛰어 들었고 나는 이탈해야 했다. 그래서 그것은 미확인으로 처리됐다.
 나는 그 큰 비행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멧집이 좋고 칵핏이 넓었으며 엔진의 신뢰성도 좋았다. 그러나 속도는 라이트닝보다 떨어졌으며 기동성이 더 좋긴 하지만 여전히 제로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불행히도 커비 대령은 잔인한 방법으로 그 사실을 배웠다. 그는 22기의 확증 격추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제로 한 대가 그의 선회 반경 안쪽으로 파고들어 그를 격추 했다.
 그때 즈음 나는 중위로 진급했고 편대장이 됐다. 나는 한번 출격하고 난 후 말라리아 걸렸고 그 후 몇 주를 포트 모스비에 있는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의 시드니에 있는 재활원으로 보내졌다(그곳에서 나는 아름다운 호주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건 다른 얘기다).
 내가 호주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비행대대는 새로운 후기형 P-38을 장비했다. 우리는 그 일을 축하하며 캠프 파티를 열었다. 우리의 새로운 대장인 월리 조던 소령은(게리 존슨은 진급해서 전대 본부로 전속됐다.) 호주 맥주를 두 짝 풀었다. 그러나 그 맥주는 차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뜨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맥주를 새 P-38의 보조 연료 탱크에 담았다. 그리고 나는 3만 피트로 올라가서 멏 분간 머문 뒤 급강하로 돌아왔다. 이제 우린 얼음 같은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것이 록히드 라이트닝의 위대한 점 중 하나였다: 상승 한도와 상승 속도 모두 우수했다.
 새 라이트닝으로 처음 임무를 수행하던 중 나는 리처드 봉 소령과 비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당시 플라잉 나이츠의 최고 에이스였으며 전쟁이 끝났을 때는 미국 최고의 에이스가 됐다. 확증 격추만 40기였고 이런 저런 이유로 미확인된 기록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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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전선에서 복무 중인 리처드 봉. 그는 40기 격추를 달성한 후 출격을 금지 당했다]


 딕은 한동안 일선에서 떠나 있었고 나는 그의 전투를 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사격 실력이 형편없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사격을 잘 못했기에 나는 그를 보고 뭔가 비결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조종사들로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비법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날 어디로 출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8대의 P-38으로 이루어진 편대가 전투기 소탕 임무를 수행 중이었고 나는 그의 편대에서 두 번재 분대를 이끌고 있었다. 비행한 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한 정체불명기를 포착했다. 나는 나중에 그것이 그의 비결 중 하나임을 알았다: 그는 매의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적기를 찾아 낼 수 있었다.
 내가 저 멀리서 겨우 제로 비슷한 것을 찾아냈을 때 우리는 아직 사거리 밖이었고 평행한 항로에 있었다. 나는 봉이 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90도 편차 사격을 시작했을 때 그 일본기는 최소 1500 미터 떨어져 있었다. 한 순간 그 제로는 비행기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불덩이가 되어 떨어 졌다. 그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장거리 편차 사격이었다. 나는 그가 사격하기 전에 직접 탄도 거리내로 접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기지로 돌아와 착륙한 후 나는 그 소령의 인상적인 사격을 칭찬했다. 딕은 말수가 적었지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훌륭했지 그런데 말야, 커크,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그건 내가 쏴본 것 중 가장 운이 좋았어."
 "쉽게 해낸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그가 좀 더 상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하며 말했다. 나는 그가 평소 직접 탄도 거리내로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때 편차 사격을 시도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운이 좋았지. 사실 달라질 건 없어. 제로에게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속도와 화력의 우위를 이용하는 것 그리고 가까이 접근하는 거야."
 그렇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에이스중 에이스와의 특별한 일화였다.
 그 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일본군 제로와의 전투 중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뉴 기니의 서북쪽 해안에 있는 마노콰리에서 16기 편대로 전투기 소탕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나는 선두의 red 편대에 있었다. 그것은 장거리 임무 중 하나였고 우리는 좁은 칵핏 안에 앉은 채 표적 상공에 도달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는 접근하는 동안 표준적인 절차를 수행했다: 기총 점검, 보조 연료 탱크 스위치 설정, 건 사이트 켜기, 좌석띠 고정. 이 과정을 겨우 끝냈을 때 비행대대장인 조던 소령이 소리 쳤다, "Bogey! 12시에 bogey. 탱크 투하!"
 약 12명의 일본 해군 조종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아주 드물게 그들은 정면으로 급강하했다. 대부분의 일본 조종사들은 그런 방법으로 P-38을 상대하지 않는다. 라이트닝의 기수에서 일직선으로 발사 되는 4정의 50 구경 기관총과 한 문의 20 밀리 기관포는 살인마였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모두 정면으로 맞섰고 모든 기총이 불꽃을 뿜으며 서로 상대편을 향했다. 몇 초후 거대한 공중 난투극이 벌어 졌고 제로와 P-38이 여기저기로 날아 다녔다.
 제로 한 대가 내 건사이트 앞에 나타났고 나는 총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는 급선회로 뛰어 들었다. 나는 뒤 쫓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내버려 둔 채 고속 상승을 실시했다. "9시! 9시에 한 대, red leader!" 내 윙맨이 소리 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적기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미 사격하고 있었지만 나는 각도를 통해 리드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를 향해 선회했고 그는 이탈했다. 나는 다시 상승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렸더니 윙맨이 보이지 않았다. "Red two! red two, 편대로 돌아와!" 나는 무전기로 외쳤다.
 응답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 봤다. 그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1, 2초 후: "쫓아 내. 내 뒤에 붙는 놈 쫓아 내 줘!" 나는 윙맨의 목소리를 알아 차렸다. 나는 기체를 90도로 기울이고 아래를 봤다. 역시, 내 윙맨은 얕은 각도로 강하 중이었고 제로 2대가 그의 꼬리에 붙어 있었다. 그는 적기 한 대를 쫓아갔고 다른 적기들이 그에게 달려 든 것이다.
 나는 재빨리 하강 선회하며 그를 쫓아갔다. 그들은 P-38에게 불꽃 줄기를 쏟아 내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기 전에 격추될 것이 분명했다. 제로가 구름속에 뛰어 들던 날 썼던 방법이 나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나는 기수를 들고 긴 연사를 가했다. 그것은 또하나의 기적적인 사격이었다: 예광탄이 도주하는 윙맨과 추격하는 제로 사이에 떨어 졌고 그들은 곧 이탈했다.
 공중전에서 예광탄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 2차 대전 조종사들 간의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몇몇 최고 에이스들은 예광탄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사냥감에게 사격받고있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제로와 공중전을 할 때 그것은 일리가 있었다. 적기가 예광탄을 보면 그는 급선회하거나 스플릿 S로 도망쳤다. 그러나 우리 중 대부분은 사격이 그리 능숙하지 못했고 어디에 쏘고 있는 지 볼 필요가 있었다. 어찌 됐건 나는 그 날 예광탄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내 윙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그랬으면 악어나 상어에게 운좋은 날이 됐을 것이다.
 "빨랑 편대로 복귀해, red two," 나는 무전기로 으르렁 거렸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줄기가 캐노피 위를 가로 질렀다. 나는 거의 제로만큼 잽싸게 스플릿 S를 실시했다. 누가 나를 쐈는지 볼 수 없었지만 수평 비행 상태 됐을 때 또 다른 적기가 내 앞에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발사 단추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포탄이 그의 날개와 꼬리를 따라 폭발하면서 섬광이 보였다. 그러나 급강하 직후의 빠른 속도로 인해 추월할 지경이었다. 나는 스로틀을 뒤로 잡아채며 사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오른쪽 위에서 충돌할 경로에 있었다. 나는 왼쪽으로 넘어간 다음 그의 바로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순간 그의 기체에서 화염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서 불타는 제로와 날개를 맞대고 있었다. 칵핏에 앉아 있는 조종사가 뚜렷이 보였다. 그의 헬멧에 있는 고글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그의 기체는 엔진 카울링 뒤부터 완전히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건너편의 나를 봤다. 제로가 불타는 조각들로 폭발하기 전 그 기묘하고 고정된 순간동안 우리는 서로를 주시했다. 그 믿을 수 없는 경험은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오늘 일처럼 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
 내 건 카메라는 그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 비행대대장인 월리 조던 소령이 그것을 봤고 내 격추가 인정됐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깊이 숨겨둔 감정이 있었지만 드디어 확증 격추를 얻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나의 가족과 고향 사람들 또한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마을 신문에 리처드 커클랜드 중위가 "제로를 격추"했다고 실린 것이다.



출처 : Kirkland, Richard C., Tales of a War Pilot , 1999, 16-21



 




역자 주
    1. milk run은 조종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적기가 출현하지 않은 임무를 의미하는데 공군에서 발간한 항공용어집에는 "정기 비행 업무"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나라 조종사들이 이런 말을 쓰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원문을 그대로 남겨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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