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2차대전 에이스(1) Air Combat Stories

 

  이 이야기는 William Dunn이 저술한 Fighter Pilot이라는 책에서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미국인인 저자는 2차 대전 발발 직후 캐나다 군에 자원했으며 영국에 배치되어 있던 중 조종사 훈련 과정에 지원하여 독수리 비행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내 첫번째 작전 임무는 호송단 초계로 별로 할 얘기는 없다. 영국 해협을 항해하는 호송단이 우리의 할당 구역인 클랙튼과 그레이트 야마우스 사이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2대의 항공기로 선박 주위에 전투기 엄호를 유지해야 했다. 호송단 초계는 단조로웠다. 두 시간 동안 선박 주위를 맴돌며 하늘에 구멍이나 내는 일을 하루에 두세번 반복해야 했다.
 가끔씩 우리 구역의 관제사가 무선으로 호출하기도 했다: "Parson Blue 분대. Heads up. bogie 2대가 동북쪽 7 마일에서 접근 중. Vector 055, Angels 8, Buster!" (이 통신을 번역하자면 미확인기 두 대가 7 마일 밖에서 우리 호송단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정체불명기를 요격하기 위해 고속으로 8천 피트에서 055도 방향으로 날아 갈 것이라는 의미이다. 구역 관제사는 이 정보를 무선 방향 탐지기(Radio Direction Finder)를 통해 얻었다. 그것은 전자 탐지기로 탐색 레이더의 원형이었다. 이 요격 행동은 약간의 자극을 줬다,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은. 그러나 대개 정체불명기는 아군기로 밝혀지거나 대규모 새 때가 RDF의 스크린에 나타난 것이었다.
 여러 번 정체불명기는 호송 선단을 공격하려는 적기로 밝혀졌다. 하루는 Ju.88 한 대가 낮게 깔린 비구름 바로 아래로 날아와 우리의 호송단을 급습했다. 이 경우 레이더 경보는 없었다. 그 폭격기는 너무 낮아서 RDF의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폭발로 바다에 하얀 물기둥이 치솟는 것을 보고 나서야 조지와 나는 선단이 공격 받고 있음을 알았다. 조지는 구역 관제사에게 공격을 통보했다. 그는 구름 아래의 독일군을 추격하면서 나는 위에서 머무르라고 지시했다. 구름의 두께는 겨우 100 피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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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kers Ju.88. 독일 공군에서 여러 임무에 널리 사용된 폭격기였다.]

 조지가 Ju.88에게 한차례 점사를 가하자 독일 조종사는 구름 속으로 숨으며 상승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적기에게 사격했고 그는 구름 속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조지는 다시 그에게 발사했다. 우리가 독일기를 프랑스 해안까지 추격하는 동안 이 상승과 하강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때쯤 관제사는 우리에게 공격을 중지하고 이탈하라고 지시했다. 10대의 적기가 그 지역에 있었고 우리를 요격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 Ju.88은 두 엔진에서 연기를 뿜으며 간신히 날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적기에 손상을 줬음을 인정받았다. 전부 10분 정도 밖에 안되는 일이었지만 내겐 가장 짜릿했다. Ju.88은 상당히 빠른 비행기였다. 우리가 더 빠른 스핏파이어를 타고 있었다면 신속히 따라잡고 격추할 수 이었을 것이다.
 이런 호송단 초계는 아주 위험할 수 있었다. 선박의 대공포 사수들은 비행기가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그것이 아군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조차 경고 사격을 했다. 배가 공격받고 있을 때는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쏴댔다. 그래서 배에서 반마일 정도 떨어져 2천 피트 상공에서 선회하는 편이 좋았다. 날씨가 안좋으면 더 낮고 가까이에서 선회해야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사수들은 방아쇠를 눌러댔다.
 호송단 초계 외에도 우리 비행대대는 매일 일출부터 일몰까지 비상 대기했다. 대체로 2기로 구성된 분대 두 개가 출격 가능 상태를 유지했다. 어두워지면 우리는 해제되고 야간 전투 비행대대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영국에서 봄, 여름 기간 동안 우리의 근무 시간은 길어서 새벽 4시 30분에서 약 11시까지였다. 가을과 겨울에는 우리의 근무가 짧아지고 대신 야간 전투기들이 긴 근무를 서게 된다.
 정체불명기나 적기가 레이더에 포착되면 추정 적기의 수에 따라 우리 구역에 스크램블이 걸렸다. 영국 공군 전투기 사령부의 작전 명령에 의하면 2기 분대는 2분, 6기 편대는 3분, 전체 비행대대 12기는 7분 안에 이륙해야 한다. 이 허용 시간은 스크램블 명령이 전화로 전달된 시각부터 시작해서 상공의 편대장이 구역 관제사의 확인을 받는 시각에 끝난다.
 우리 전투기들은 비행장 외곽의 콘크리트나 모래주머니로 만들어진 분산소에 주기되어 있었다. 스크램블 명령이 떨어지고 사이렌이 울려 대기 시작하면 조종사들은 자신의 비행기로 미친 듯 뛰어 갔다. 비행대대가 비상 대기일 때 기장들은 지정 항공기의 엔진을 항상 예열시켜 놓았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즉시 시동을 걸었다. 조종사가 도착했을 때는 대개 막사에서 분산소까지 뛰어 오느라 숨이 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칵핏으로 들어가서 신속히 낙하산과 하네스를 결속하고 헬멧을 쓴 후 엔진에 연료를 보냈다. 관제탑에서 발사된 붉은 조명탄은 하늘을 가로 질렀다. 그것은 비행장 주변의 항공기들에게 스크램블이 진행 되고 있으니 떨어져 있으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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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 초 독수리 비행대대에서 운용했던 허리케인.]

 당시 우리 기지에는 활주로가 없고 온통 잔디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스크램블 걸린 전투기들은 분산소에서 나오자마자 일직선으로 활주했다. 이 순간 매우 난잡한 일이 일어 날 수 있다. 특히 편대나 비행대대 출격의 경우 모든 비행기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륙했다. 스크램블 이륙은 가끔 조직된 혼란처럼 보였고 나는 실제로 그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이륙해야 했다. 내가 최대 출력으로 잔디를 질주하고 있을 때 비행장 반대편에서 다른 놈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다면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니어 미스나 충돌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다.
 스크램블로 이륙할 때는 상공에 도달하기 전까지 낙하산이나 하네스를 결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 초반에 지급된 어떤 낙하산은 우리의 동료들에게 불필요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불러 오기도 했다. 이 낙하산은 하네스에서 분리가 가능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비상 대기 중일 때 낙하산은 칵핏에 놓고 하네스를 몸에 착용하고 있었다. 스크램블이 걸렸을 때 조종사는 비행기로 달려가 칵핏으로 뛰어 든 후 가끔 낙하산을 하네스에 연결하는 것을 잊었다. 그들 중 일부는 격추 되었고 낙하산 없이 탈출해 버렸다.
 어느 화창한 이른 아침 정비된 허리케인을 시험 비행하려고 이륙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낙하산을 사용했다. 약 8천 피트에서 엔진이 갑자기 쿨럭 거리기 시작했고 냉각수 온도가 끝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엔진이 불타기 시작하더니 곧 멈췄다. 할 일은 단 하나, 불타는 기체에서 재빨리 뛰쳐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하네스를 원위치 시키며 무전으로 "May Day"를 두 번 외쳤다. 그리고 무전기 플러그와 산소 호스를 뽑았다. 엘리베이터 트림을 최대 전진시켜 놓고 캐노피1)를 뒤로 민 다음 나는 허리케인을 배면 비행으로 뒤집었다. 정확히 거꾸로 되는 순간 나는 조종간을 당기고 있던 손을 놓았고 기체가 상승하며 나를 칵핏 밖으로 밀어 냈다. 프로펠러의 세찬 후류에 떠밀린 나는 꼬리 날개를 몇 인치 간격으로 스쳤다.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탈출할 때 수평 안정판이나 수직 꼬리 날개에 부딪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한 순간 나는 조용한 하늘로 떨어졌고 아래의 지면은 미친 듯 빙빙 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립코드 D-링을 잡아 당겼고 낙하산이 흘러 나와 머리 위에서 활짝 펼쳐졌다. 그 순간 나는 불타는 기체에서 탈출하는 모든 절차를 생각하지 않고 정확히 실행했음을 깨달았다. SFTS(Service Flying Training School)에서 훌륭한 훈련을 받은 결과였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제 최악은 넘겼고 나는 단지 조금 그을렸을 뿐이다. 천천히 강하하며 조금씩 흔들렸고 아름다운 낙하산은 내 신경을 상당히 안정시켰다.
 어느 농부의 목장에 도달했을 때 나는 예상보다 세게 부딪혔다. 부풀어 오른 낙하산에 나를 약 20 야드나 끌고 갔고 나는 겨우 바람을 빼서 낙하산을 구길 수 있었다. 불타는 허리케인과 개방용 낙하산이 마틀샘 히스의 군부대에 목격되었다. 몇 분후 고기 마차(구급차)가 오스본 군의관과 그의 의무병들을 태우고 현장에 도착했다.
 "아픈데 없어?" 군의관이 물었다.
 "없는 거 같습니다." 나는 팔과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이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아플 거야. 이거 마셔." 그러고서 군의관은 위스키 반 컵을 따랐다. 그는 그것을 들고 내 옆의 풀밭에 의무병들과 함께 앉았다. 우리는 거기서 군의관의 술독을 비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기 마차에 실려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1941년 5월의 어느 아침 나는 처음으로 적 전투기와 전투를 벌였다. 우리 비행대대는 스크램블이 걸렸고 만 2천 피트까지 상승한 후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 해안으로 유도됐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의 메서슈미트 Me.109E 비행대대와 조우했다. 그들은 해협 반대편에서 초계 중이었다. 우리는 독일군보다 3천이나 4천 피트 높은 고도에 있었고 빌 테일러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신참인 나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혼란스럽고 당황했으며 거의 공황상태였다. 한 순간 우리 비행대대는 대형을 이루어 비행 중이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모두 급강하해서 독일놈들과 뒤섞여 버렸고 나는 떼거지로 빙빙 날아다니는 전투기들 위에 혼자 남겨졌다.
 단 한 순간이었지만 멈칫거린 나 자신을 저주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난투극 속으로 강하했다. 109 한 대가 내 건사이트를 가로 질렀고 나는 길게 연발로 사격했지만 맞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케어리가 한 말을 생각했다. 짧은 사거리, 방풍창을 채워라, 그리고 발사! 그 때 예광탄 줄기가 내 캐노피 앞으로 슝 슝 날아 왔다. 작고 하얀 빛을 내며 불타는 공 같았다. 그러나 맞지는 않았다. 나는 조종간을 세차게 왼쪽으로 민 다음 뒤로 당겼다. 그리고 고속 실속에 걸려 스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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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sserschmitt Me.109E. 대전 초기 독일 공군의 주역이 된 전투기였다.]

 내가 회복했을 때는 편대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고 나는 해협 수면에서 약 2천 피트 상공에 홀로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극도로 두려웠다. 조종간을 너무 꼭 쥐고 있어서 손가락의 감각이 마비되고 있었다.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빨리 거기를 빠져 나가서 온전하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정말로 겁쟁이라고 믿었다.
 기지로 돌아온 후 나는 내 자신에게 공중전은 이제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든 다시 보병으로 돌아 갈 것이다. 그래, 나는 그 망할 3인치 박격포를 기꺼이 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이다. 마음속으로 수치심을 간직한 채 나는 무사히 마틀샘에 착륙했고 비열한 영웅은 돌아 왔다. 나는 속이 울렁일 정도의 공포 느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완전히 신물이 났다. 아마 나를 "귀향" 처리하는 것이 영국 공군에게 최상일 것이다.
 사실 두 비행대대간의 전투는 고작 몇 분 동안 일어났고 그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양쪽에서 아무도 격추되지 않았고 손상된 기체조차 없었다. 즉 진짜 전투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간략한 공중전 후 엉클 샘 모릴로는 비행대대에 합류해서 귀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는 어두워진 저녁 하늘 속에서 윙맨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조종사는 동체 옆면에 검고 하얀 십자가 커다랗게 그려진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Me.109! 깜짝 놀란 샘은 반대편을 둘러 봤고 독일 비행대대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게 됐다. 거의 동시에 독일군 역시 샘의 허리케인에 그려진 영국 공군의 원형 표지를 본 듯했다. 갑자기 모두 대형을 이탈해서 사방으로 흩어 졌다. 엉클 샘은 스플릿 S(기체를 뒤집은 후 조종간을 뒤로 당겨 급강하 한 후 수평으로 올려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를 실시해서 기지를 향했고 예닐곱의 독일기가 전속력으로 그를 쫓았다. 잠시 추격한 후 그들은 프랑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마 연료 부족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틀샘에 돌아 왔을 때 샘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 채 사고 이야기를 들려 줬다.
 첫 번째 공중전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 후 내 얼굴 또한 파랗게 됐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전략적 철수"를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점을 매우 감사했다. 정보 장교인 로비 로빈슨의 디브리핑이 끝난 후 나는 조용히 막사로 돌아갔고 옷을 그대로 걸친 채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잠들 때까지 울었다. 나는 내가 겁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전에도 적과 싸운 적 있었다. 나는 수없이 사격을 받았고 여러 차레 폭격을 받았다. 이 끔찍한 공중전의 공포는 왜 갑자기 나를 엄습하는가?
 경련을 여러 번 일으킨 후 나는 잠이 들었고 격추된 비행기가 내 꿈을 채웠다. 기체는 온통 불타고 있었고 조종사인 나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나는 새벽에 잠이 깼고 식은 땀이 온 몸에 흐르고 있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떨리는 손으로 아픈 머리를 감쌌다. 또다시 나는 내 자신을 소리없이 비난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마,"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자신을 찾아야 해. 남들이 할 수 있다면 너도 할 수 있어. 그 망할 깍두기들도 너보다 잘 훈련된 게 아냐. 그들 역시 겁났을 거야. 포기해선 안돼, 이 멍청한 개자식!" 그리고 나는 내 턱을 세게 쳤다. 진짜 아파질 때까지 여러 번 때렸다.







 출처: Dunn, William R, Fighter Pilot : the First American Ace of World War II, 48-53

 





역자 주
    1. 이 책에서는 canopy가 아니라 cockpit hood 혹은 hood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국식 표현이 익숙치 않아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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