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항공우주정보

본문시작

조회 수 20947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968년 1월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떠진 뒤 바로 1969년 4월 EC-121 워닝스타(warning star) 정찰기가 피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아쯔키 해군기지에서 이륙한지 7시간만에 연락이 끊겼고 결국 격추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격추사건으로 34명의 승무원들이 사망했습니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1969년 4월15일 오후 2시쯤 북한 청진 남동쪽 152㎞ 상공에서 미그 21이 발사한 AA-2 아톨에 의해 격추당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당시에는 하늘이든 바다든 북한의 동해바다 영해를 침범하여 정찰활동을 하는일이 잦았습니다. 이당시 북한의 동해쪽에 공군기지가 없었기에 미군의 정찰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이에 북한이 결단을 내린것으로 보여집니다.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북한은 동해쪽에 해군기지가 없어서 평양인근의 기지에서 미그21일 분해해서 철도로 이동 동해쪽에서 조립한 후 단거리 이착륙장치(미그 21에 로켓을 달고 뜨는 사진이 많이 있죠)를 이용해 순식간에 EC-121기를 격추시키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근처에 있던 호위기들이 손써 볼 새도 없이...

이후 미국에 의해 다시한번 전쟁이 날뻔했었습니다.


격추당하는 EC-121 (미그기가 잘못 그려져있네요. 미그 21인데..)

격추당하는 EC-121



EC-121을 격추시긴 미그 21
TAG •

Who's 뱅기

profile

안녕하세요. 뱅기입니다.
새로운 사이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차근차근 채워나가겠습니다.
에크가족들이 함께해서 항상 감사합니다.

  • ?
    .... 2009.03.30 16:40
    결단의 날이 되나요?
  • ?
    ..... 2009.03.30 16:43
    이후 미국의 의해 다시한번?
  • ?
    ..... 2009.03.30 16:45
    근처에 있던 호위기들이 손써 볼 새도 없이???

    당시 상황이  이게 맞나요?
  • profile
    뱅기 2009.03.30 17:32
    호위를 위해 팬텀기들이 멀리 있었다고 합니다. 미그기들의 행동방경이 그리 넓지않기에 복귀하려면 짧은 시간안에 치고 복귀해야겠지요 만일 교전이라 하면 돌아갈 연료는 없는것이죠. => 이부분 확실하게 밝혀진바는 없습니다.

    미국에 의해 다시한번이라는 말은 한반도에서 다시한번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뜻이고 그것이 이번에는 미국에 의해서 라는 뜻입니다. 말이 짧아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요. 실제로 이일이후 미국은 병력과 항공모함등 군사력을 증강시켜 사실상 동해에서 전쟁준비를 마쳤었습니다. 이당시 전쟁전비를 마친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1. 북한공군의 EC-121 격추사건 4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