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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등훈련기 T-50, 왜 수출 늦어지나
기사입력 2008-04-17 15:46 |최종수정2008-04-17 16:52

[신동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고등훈련기 T-50의 수출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연말 결론이 날 줄 알았던 UAE(아랍에미리트연방)의 고등훈련기 기종 결정이 순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T-50의 수출 문제는 시원스럽지 못한 것일까. 한국이 전투기급 항공기를 수출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이야기인가.

기자는 T-50 개발 과정을 취재해 ‘T-50, 이렇게 만들었다’(지식산업사, 2006년)는 제목의 단행본을 낸 적이 있다. 때문에 T-50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이 있어, T-50 수출 진행이 더딘 이유가 매우 궁금해 취재를 해보았다. 예상한 대로 T-50의 수출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T-50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T-50이 채택됐거나, 채택되지 않았다’는 뉴스를 먼저 들을지도 모른다. UAE는 무기 도입 절차가 확정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변수를 지켜보면서 기다려야 하지만, 싱가포르는 무기 도입 절차가 정착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아직 고등훈련기를 도입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고등훈련기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싱가포르에서 먼저 결정될 수도

한국은 무기 도입 절차가 확립돼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한국은 120대의 KF-16 전투기를 도입한 KFX 사업과 40대의 F-15K를 수입하는 FX 사업을 통해 무기 도입 절차를 구축했다. 이전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도입할 무기를 결정했다. 정리해서 말하면 UAE는 KFX와 FX 사업 직전의 한국 단계에 와 있고, 싱가포르는 한국을 넘어선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기 도입 절차가 확립돼 있지 않다고 해서 UAE를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명확한 절차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나라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쉬우냐’ ‘어려우냐’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기 도입 절차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눈부시게 진화하는 무기 도입 절차를 알지 못하면 한국은 T-50을 수출할 수 없다. 싱가포르와 UAE 사례를 중심으로 무쌍하게 변화하는 무기 수출시장을 살펴보며, T-50의 수출 가능성을 정밀 검증해본다.

2006년 싱가포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9320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3만8410달러) 다음으로 잘산다(산유국 제외). 그래서인지 모든 일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첨단 방식으로 처리한다. 싱가포르가 채택한 첨단무기 도입 기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T-50 수출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싱가포르는 서울(605㎢)보다는 조금 넓고 부산(765㎢)보다는 조금 작은 699㎢의 영토를 갖고 있다. 이렇게 좁은 땅에 423만명의 국민과 100만명 넘는 외국인이 살고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일부로 있다가 1965년 독립했다. 말레이시아와는 육지로 연결돼 있고 남쪽은 바다에 면해 있는데 ‘코앞’이라고 할 수 있는 30㎞쯤 떨어진 곳에 휴양지인 인도네시아의 빈탄 섬과 바탐 섬이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싱가포르는 영공이 아주 좁다. 싱가포르 공군기는 이륙하는 즉시 기수를 꺾어 싱가포르 상공만 뱅뱅 돌아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영공을 침범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공군은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그들의 방어 전략을 세워야 했다.

현재 서울에 있는 공항은 김포공항 하나뿐이다. 한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은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의 영종도에 있고,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서울공항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다. 서울공항은 K-16 또는 성남기지로 불리는 공군기지다. 하지만 전투기가 배치돼 있지 않다. 수송기와 정찰기 등 특수 목적기로 구성된 15혼성비행단이 있을 뿐이다.

 

도시국가의 방어전략


 
MB는 대선 출마의사를 밝힌 2007년 1월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방문해 T-50 조종석에 앉아보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UAE에 T-50 선정을 요청하는 편지도 보냈다. 
서울과 수도권을 지키는 전투기는 수원기지나 충남의 서산기지, 충북의 청주기지와 중원기지, 강원의 횡성기지 등에서 이륙한다. 대한민국은 싱가포르에 비하면 국토가 월등히 넓기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 방어에 투입되는 전투기를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배치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공군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한국의 인천공항 구실을 한다. 싱가포르 공군은 창이공항 동쪽에 급유기(KC-135)와 수송기(포커-50) 초계기(포커-50ME)를 운용하는 공군기지를, 서쪽에 F-16 전투기를 배치한 공군기지를 두었다. 그리고 파야레바 기지에 수송기(C-130 등)와 요격기(F-5)를 배치하고, 셈바왕 기지에는 헬기를, 텐가 기지에는 경보기(E-2C)와 전투기(F-16)를 두고 있다.

이것이 싱가포르가 보유한 공군기지의 전부다. 싱가포르의 공군기지는 한국 공군기지보다 작다. 한국 공군기지는 한 개 비행단이 머물 정도로 규모가 크지만, 싱가포르 공군기지는 면적이 좁아 두세 개 비행대대만 배치돼 있다. 서울과 면적이 비슷한 싱가포르가 창이공항과 별개로 다섯 개의 공군기지를 가진 것은 사실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과 대립한 상태에서 4강에 둘러싸여 있어 안보 수요가 많은 편이다. 싱가포르는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안보 수요’가 큰 나라다.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싱가포르 역시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돼 함께 독립하지 않고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남았다.

이후 1963년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 연방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에는 중국인이 많이 사는데 이들과 말레이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잘산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정부가 많은 세금을 부과하자 싱가포르는 반발해 1965년 독립을 선언했다. 이때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가 무력으로 강제합병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영국은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하는 부대를 보내 1971년까지 싱가포르를 지켜주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싱가포르에는 아직도 영국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 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아주 좋아졌다. 하지만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말레이시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턱밑인 남쪽에 있는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2억2261만명)가 많다. 지금은 가난하지만 풍부한 자원과 인구가 있어 대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로서는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싱가포르는 싱가포르항을 무대로 자유무역을 강화하고 국제금융을 도입해 빠르게 발전했다.


제3국에 전투기를 배치

싱가포르 공군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가하는 무언의 압력에 대항해 자유 수호를 국가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4강에 둘러싸여 있지만, 540여 대의 전투기를 포함해 800여 대에 달하는 공군기와 600여 대가 넘는 헬기를 보유한 ‘항공 강국’이다. 한국군은 9개 전투비행단에 1개 전술공수비행단, 1개 혼성비행단, 1개 훈련비행단, 그리고 양으로는 세계 3위인 헬기 전력을 갖고 있다.

대국 사이에 있는 만큼 싱가포르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강한 항공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면적이 좁아 89대(F-16 44대, F-5 45대)의 전투기와 10대의 수송기, 8대의 급유기, 5대의 초계기, 4대의 경보기, 57개의 헬기만 배치해놓았다. 이것이 싱가포르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항공력인데, 이를 한국식으로 정리하면 전투비행단 한 개에 혼성비행단 하나, 헬기 항공여단 하나가 된다.

이렇게 미약한 항공력으로는 싱가포르의 자유를 지킬 수 없다. 하지만 지갑이 두툼한 싱가포르는 새로운 개념의 방어 전략을 도입했다. 첫째, 싱가포르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항공력은 3국에 배치해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군사력에서는 종종 질(質)보다는 양(量)이 중요하다. 그러나 공간이 부족한 싱가포르는 ‘양보다는 질을 중시한다’는 것을 두 번째 전략으로 선택했다.

 

싱가포르는 인도 공군의 카라이쿤다 기지와 미국 공군의 루크기지를 빌려 F-16을 배치하고 전투훈련을 하게 했다. 헬기는 호주의 오케이 공군기지와 미국의 실버벨 육군헬기공항 그리고 그랜드 프레이리 도시공항을 빌려 훈련하게 했다. 다른 나라의 기지와 영공을 빌려 훈련시키는 것은 국토 면적이 좁은 이스라엘도 선택한 방식이다. 이스라엘 공군은 터키에서 전투기 훈련을 시키고 있다.

전투 훈련을 제3국에서 할 형편이라면, ‘초짜 조종사’ 양성 훈련은 100% 외국에서 시켜야 한다. 전투기 조종사는 기본훈련기와 고등훈련기 연습을 거쳐 만들어진다. 싱가포르는 기본훈련기 연습은 인도양에 면한 서(西)호주 퍼스에서 시키고 있다. 퍼스 북동쪽에 있는 피스(Pearce) 기지를 빌려 병아리 조종사들을 양성한다.

고등훈련기 훈련은 프랑스군의 핵무기 저장기지로 유명한 카조(Cazaux) 공군기지에서 시킨다. 고등훈련을 끝낸 조종사는 인도와 미국 기지로 보내 전투기를 모는 실전 훈련을 시킨다. 그리고 베테랑급 실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싱가포르로 불러 조국의 영공을 지키는 실전 임무에 투입한다.

양을 질로 바꾸는 작업도 차곡차곡 추진했다. 이러한 시도의 대표가 노후한 F-5 전투기를 도태시키고, F-15E로 교체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F-15E를 도입한 나라다. 한국이 도입하는 F-15E를 F-15K라고 하듯이, 싱가포르가 도입하는 F-15E는 F-15SG로 불린다. 싱가포르는 스텔스 전투기인 F-35가 양산되기 전까지 총80대의 F-15SG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레이더 성능만을 놓고 비교할 경우 F-15SG는 현존 최강의 전투기로 꼽힌다. 미 공군이 보유한 F-15E에는 기계식인 AN/APG-70 레이더가 탑재돼 있고, 한국 공군의 F-15K에는 AN/APG-70보다는 낫지만 역시 기계식인 AN/APG-63(v)1 레이더가 실려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F-15SG에는 ‘AESA’로 불리는 전자식 레이더 AN/APG-63(v)3이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겠다는 싱가포르의 전략은, 지난해 7월 결정된 기본훈련기 도입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싱가포르 공군은 오랫동안 서호주의 피스 기지에서 30대의 S-211 기본훈련기로 병아리 조종사를 양성해왔다. 그런데 S-211이 오래돼 이를 신형 기본훈련기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KT-1 기본훈련기를 생산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KT-1의 경쟁자가 스위스 필라투스 사(社)가 생산하는 PC-9인데, 필라투스 사는 PC-7에 이어 PC-9을 개발함으로써 세계 기본훈련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KT-1과 PC-9은 1000마력대의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필라투스 사는 1600마력의 힘을 가진 새로운 기본훈련기 개발에 착수해 2007년 PC-21을 양산하게 되었다.


양보다는 질

KT-1으로서는 좇아갈 수 없는 ‘차원이 다른’ 기본훈련기가 탄생한 것이다. 세계 최고임이 분명할 것 같은 PC-21의 최초 고객이 된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다. 필라투스 사의 모국인 스위스는 두 번째 고객이 되었다. 싱가포르 공군은 S-211을 30대 운영해왔으나, PC-21은 18대만 도입하기로 했다. 역시 ‘양보다는 질’로 간 것이다.

PC-21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싱가포르 공군은 ‘한국으로서는 처음 듣는’ 새로운 기본훈련기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 공군은 사천에 있는 3훈련비행단에서 KT-1으로 병아리 조종사를 훈련시킨다. 공군이 기본훈련기를 구입해 직접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공군은 훈련비행단을 만들지 않고 민간기업에 맡겨버렸다. PC-21도 훈련을 담당할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구입케 했다.

싱가포르가 도입한 방식은 운전학원 체제와 비슷하다. 운전기술을 익혀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은, 운전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자동차는 구입하지 않는다. 운전기술은 운전학원에 있는 자동차로 익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운전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자동차는 운전학원이 구입한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선택은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깨버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방은,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함께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하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민간재정으로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흔하게 보는 ‘사철(私鐵)’과 한국의 인천공항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여러 건설 회사가 공동으로 투자해서 만든 ‘신공항하이웨이(주)’에서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도 민자(民資)로 건설해 운영하는 사회간접자본이다.

 

훈련회사 탄생시킨 민간 주도 방식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맡기는 것을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라고 하는데, PFI는 ‘민간재정 주도 방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영국은 사회간접자본에서만 실시되던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최초로 국방분야로 확대했다. 영국은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채택한 국가이기에, 국방분야에도 과감히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모병제 국가에서는 징병제 국가와 달리 군인 한 사람에게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전투나 전투와 관련된 것 이외의 분야에는 군인을 투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전투 분야에는 군속(軍屬)이나 군무원 또는 민간기업을 투입하는 것이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군인은 국가가 고용을 책임져야 해 쉽게 줄일 수 없지만, 민간은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신속히 늘리고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도 모병제 국가인 만큼 비전투 분야는 과감히 민간을 투입한다. 서울 용산에 있는 미 8군 기지를 방문하면, 장년의 한국인들이 군복을 입고 위병소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군도 위병소 근무, 장비 정비, 식당 운영 등 비전투 분야는 대부분 민간에 넘겼다.

2002년 영국은 조종사 양성을 전투와 무관한 분야로 판단하고, 이를 민간에 넘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영국 국방부와 재무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류에 서명하고, 조종사 양성 업무를 UKMFTS (United Kingdom Military Flying Training System)라는 회사에 이관했다.

UKMFTS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훈련기를 구입하고 교관을 고용한 다음 영국군으로부터 조종사 후보생을 위탁받아 훈련시킨다. 그리고 금융기관 차입금과 교관 인건비 등의 경비를 훈련기 사용기간으로 나누고 여기에 적절한 이윤을 붙여 영국 재무부에 비용을 청구한다.

민간 기업인 UKMFTS에 조종사 위탁교육을 시키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영국에서도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금방 미국과 싱가포르로 퍼졌고 지금은 전 유럽이 따라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록히드마틴과 보잉 등에서 조종사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록히드마틴이 설립한 조종사 양성 전문회사는 록히드마틴 STS(Simulation, Training and Support)이다. 싱가포르 공군은 기본훈련기를 교체하면서 기본훈련기 훈련을 록히드마틴 STS사에 맡겨버렸다. 록히드마틴 STS사와 민간재정 주도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영국은 그래도 자국 회사에 병아리 조종사 훈련을 맡겼지만, 싱가포르는 아예 제3국 회사에 맡겼다.


“실전 시뮬레이터 설치해달라”

싱가포르는 이러한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고등훈련기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프랑스 카조기지에 배치한 싱가포르 공군의 A-4 고등훈련기는 2012년 작전수명을 다하게 된다. 싱가포르로서는 새로운 고등훈련기 도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옷에 비유해서 말하면, 항공기는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다. 같은 F-15E라도 미 공군이 도입한 것과 한국 공군이 도입한 것, 그리고 싱가포르 공군이 도입한 것의 성능이 다르다. 이는 각국의 처지가 다르므로 각기 주문을 다르게 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인데, 이러한 주문을 소화하면서 항공기 제작사는 기술을 조금씩 발전시킨다.

무기 도입은 복마전과 같다. 도입 비용을 후려치면, 무기 제작사는 부속품 가격을 올려 손해를 보전한다. 싸게 샀다고 해서 싼 것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도입도 손해를 가져온다. 한국 공군은 미국 보잉 사로부터 4대의 경보기를 도입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이 도입할 경보기는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과 연결되지 않는다.

KF-16이 경보기로부터 바로 정보를 받으려면, ‘L-16’이라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 조종석에는 이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를 띄워줄 디스플레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KFX 사업을 펼칠 당시 한국 공군은 경보기 도입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의 최대 목표는 가격 인하였으므로, KF-16에 L-16과 디스플레이를 설치해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경보기 도입이 눈앞에 다가오자, 주력 전투기인 KF-16에 L-16과 디스플레이가 없어 경보기의 정보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이 시스템을 넣으려면 KF-16 전체를 뜯는 개조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비유해서 말하면 KF-16 제작 때 넣었으면 ‘100원’이면 가능했을 것을, 지금은 1000원을 투입해도 될까말까 한 상태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공군은 KF-16을 개조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쟁 유도해 국익 추구

한국처럼 첨단 전투기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에 전투기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니 항상 뒷북을 친다. 기술 후진국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싱가포르는 민간재정 주도(PFI) 방식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UKMFTS나 록히드마틴 STS에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고객을 유치하려면 최고의 제품을 최저의 가격으로 제공해야 한다. 싱가포르가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채택한 것은 훈련회사를 경쟁시킬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계약 기간에 록히드마틴 STS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다음번에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UKMFTS와 계약을 맺는다. 이렇게 하면 싱가포르는 항상 최고의 훈련기로 조종사를 양성할 수 있다. 훈련기를 직도입해 훈련비행단을 직영했다면 이러한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싱가포르는 선진국답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무기를 도입한다. 싱가포르가 정해진 절차대로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인 국가는 항공기에 대한 기본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을 제대로 경쟁시킬 수 있다.

항공기 도입은 도입하려고 항공기에 대한 최신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된다. 먼저 항공기 제작사에 “우리는 이러한 성능을 가진 항공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니, 그러한 항공기를 개발했으면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를 영어로 RFI(Request For Information)라고 하는데, RFI는 ‘정보 요구’로 번역할 수 있다. RFI를 받으면 항공기 제작사는 적성(敵性) 국가가 아닌 한 ‘항공기를 팔 수 있다’는 희망에 기꺼이 정보를 제공한다. 이 정보를 받은 나라는, 비로소 자국 도입하고자 하는 항공기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정보를 토대로 도입하고자 하는 항공기의 성능을 결정해 발표한다.

예컨대 ‘맞춤복’의 특징을 발표하는 것인데, 이를 영어로는 ROC(Request of Operating Capability), 우리말로는 ‘작전요구성능’이라고 한다. ROC가 발표되면 RFI를 받은 회사들은 그 나라가 요구하는 성능의 항공기를 제작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제작한다면 그 비용이 얼마인지를 계산해 입찰에 참여한다.

전통적인 무기 도입 절차는 입찰서를 접수하면, 각 항공기 제작사로 실사단을 보내 과연 이들이 보내온 자료가 사실인지 조사하고, 이어 각 제작사를 상대로 가격 경쟁을 시키는 순이다. 이때 발주국이 자국 항공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각 회사를 상대로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협상을 병행한다. 자국 항공회사가 상대 제작사에 수출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한 협상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협상을 통해 품목별로 점수가 나오면 이를 합산해 좋은 점수가 나온 1~3개 회사를 추려내 2라운드 경쟁을 벌인다. 한 개 회사만 추렸을 때는 ‘성능으로는 당신 회사 항공기가 가장 좋으니 가격 협상을 다시 하자’는 의미가 된다. 이때 유일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자만에 빠지면 큰코 다칠 수 있다.

좋은 사례가 KFX 사업 때의 맥도널 더글러스 사다. F-18을 제작하는 맥도널 더글러스(지금은 보잉으로 합병) 사는 KFX 사업의 유일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가격 인하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한국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취소하고 다시 경쟁을 벌여 F-16을 내놓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지금은 록히드마틴으로 합병)와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무기 도입은 복잡하게 진행되므로 최종 결정이 난 다음에는 후폭풍이 분다. 결정에 참여한 몇몇 인사가 불공정했다는 시비가 일거나 뇌물이 제공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계기관의 수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재정 주도 방식을 채택하면 후폭풍을 피해갈 수 있다.

발주국은 훈련회사에,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기종을 대상으로 한 기획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영국의 UKMFTS에는 영국 항공기는 물론이고 미국과 프랑스 항공기를 구입해 훈련시키는 비용도 함께 제출하게 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훈련회사에도 같은 방식으로 입찰서를 내게한다. 이렇게 하면 복잡한 비교 업무는 훈련 회사가 하게 되므로, 발주국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어느 조합이 가장 유리한지 판단할 수 있다.

 

훈련 회사로서는 수주가 가장 중요하니, 성능이 떨어지는 자국 항공기를 보호해줄 수 없다. 항공기 제작사로서는 최고의 제품을 최저가로 내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제작사가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 경쟁에서 승리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이 회사는 세계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민간재정 주도는 제품을 잘 모르는 소비자가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법이다. 2012년 A-4 고등훈련기의 작전수명이 다하는 만큼 지난해 싱가포르는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고등훈련기를 제작하는 세계 회사들에 RFI를 발주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하는 T-50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고등훈련기다.

싱가포르는 최첨단 전투기인 F-15SG를 도입하고 있다. RFI를 받아본 순간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싱가포르 시장에서는 T-50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보내온 RFI에는 한국이 생각하지 못한 요구사항이 있었다.

한국은 고등훈련을, T-50으로 하는 고등훈련기 조종훈련과 TA-50으로 하는 전술입문 훈련으로 나눠 실시한다. T-50으로 하는 고등훈련은 초음속 항공기를 모는 연습이다.

자동차 운전자는 차를 몰기만 하면 되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조종과 함께 레이더를 작동하고 기총과 미사일을 쏘고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도 해야 한다. TA-50으로 하는 전술입문 훈련이 바로 조종과 전투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한국 공군은 TA-50으로 기총사격을 하고, 레이더를 가동시키며, 미사일을 쏘고 폭탄을 투하하는 연습을 한다. 미사일을 쏘거나 폭탄을 투하하면 조종사는 항공기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은 실전 감각을 중시하기에 이를 느낄 수 있도록 TA-50으로 실전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다른 선택을 했다. 고등훈련과 전술입문 훈련을 하나로 합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전술입문 훈련은 실전이 아니라 가상으로 경험하도록 했다. 즉 항공기에 ‘실전 시뮬레이터’를 달아 레이더를 작동하고 무장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주문 국가 요구대로 새로 설계해야

싱가포르가 요구하는 항공기는 레이더가 탑재돼 있지 않고 무장도 달지 않은 순수 고등훈련기다. 이러한 고등훈련기에 실전 시뮬레이터를 달아 비행 중 실전 연습을 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조종사 후보생들에게 기총이나 미사일을 쏘았을 때 느끼는 감각은 경험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실전 시뮬레이터를 탑재한 고등훈련기 체계를 ETS (Embedded Training System)이라고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실전 시뮬레이터를 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IT 산업이 발전했기에 이 시스템을 개발할 수는 있다.

이 시뮬레이터를 T-50 조종실에 넣으려면 T-50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항공기 개조는 무게 중심을 새로 잡아야 하는 등 많은 사항을 재검토해야 하는 만큼, 새로 설계해 개조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싱가포르가 도입하고자 하는 시점에 장비를 만들 수 있느냐, 이 장비를 넣은 설계를 경제적으로 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실전 시뮬레이터를 내장하는 ETS 설치와 함께 싱가포르가 요구하는 것은 공중급유 장치의 탑재다. 한국 공군은 급유기가 없어 공중급유 장치가 없는 T-50을 제작했다. 그러나 4대의 급유기를 갖고 있는 싱가포르 공군은 공중급유 훈련이 가능한 고등훈련기를 요구했다. 공중급유장치를 넣으려면 T-50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러파이터와 프랑스가 내놓은 라팔, 그리고 미국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F-35와 F-22는 공중급유 시설을 갖춘 단좌기다. F-15E처럼 복좌기라면 한 사람이 조종하는 사이 또 한 사람은 공중급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좌기는 혼자서 비행과 공중급유를 해야 하므로 조종사는 사전에 충분한 공중급유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한국 공군도 수송과 급유 기능을 겸한 급유기 도입 사업(KC-X)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인 만큼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급유장치를 내장한 T-50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싱가포르가 프랑스 카조에서 운영하는 고등훈련기는 18대이나 싱가포르가 새로 도입하려는 고등훈련기는 12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ETS와 급유장치를 넣은 T-50 제작은, 12대를 도입하려는 싱가포르만 바라본 투자가 아니라 그 뒤에 올 보다 큰 시장을 바라본 투자인 만큼 한국은 싱가포르 시장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경쟁자 M-346은 개발 중인 훈련기

T-50과 경쟁할 수 있는 고등훈련기에는 영국 BA시스템스 사의 ‘호크’와 이탈리아 아에로마치 사의 ‘M-346’이 있다. 그런데 호크의 힘은 싱가포르가 사용해온 A-4보다 약하다. 호크의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과 ETS가 이미 설치돼 있다는 것 정도다. 싱가포르는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국가이므로 호크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T-50은 현재 한국 공군을 위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아에로마치 사의 M-346은 이제 시제기를 만들어 700여 회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 상태다. M-346은 초음속 비행을 하지 못한다. 아에로마치 사는 “M-346은 초음속 비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초음속 비행은 하강시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면 항공기는 가벼울수록 좋다. 가벼워야 연료를 적게 소모하고 더 많은 무장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T-50의 무게는 6480kg이고, M-346 시제기는 6900kg으로 알려져 있다. 아에로마치 사는 M-346의 무게를 4500kg으로 줄이겠다고 했으나, 이러한 감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초음속을 내려면 강력한 엔진을 실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항공기는 오히려 무거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공군이 선뜻 M-346을 사겠다는 주문을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M-346이 이탈리아 공군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항공산업을 관할하는 경제개발부가, 자국용으로 15대의 M-346을 사겠다고 발표했다.


T-50 약점은 비싸다는 것, 그러나…

T-50의 최대 약점은 비싸다는 것이다. T-50은 호크보다 대당 가격이 100만 달러(약 9.5억원) 정도 비싸다. 최대 강점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유일한 고등훈련기라는 점이다. F-5급 전투기를 보유한 나라라면 초음속 고등훈련기로 조종사를 키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F-16이나 F-15, 유러파이터와 라팔, 스텔스인 F-22와 F-35를 보유한 나라라면 T-50으로 조종사를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싱가포르 시장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을 괴롭힐 상대는, 아에로마치 등이 아니라 록히드마틴 STS 같은 훈련회사가 될 전망이다. 훈련회사 처지에서는 입찰 단가를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대해 강력하게 가격 인하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구를 수용해 싱가포르 경쟁에서 이긴다면 이는 결정적인 이정표가 된다.

이유는 유럽국가 공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통합훈련기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럽은 WTO(바르샤바조약기구)군이 붕괴한 이후 큰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 시대에 들어갔다. 전쟁은 대개 국경을 맞댄 인접국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군사동맹체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이기에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러니 유사시를 대비해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소수의 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민간으로 넘기려고 한다. 영국을 본받아 조종사 양성을 민간으로 넘기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유럽 12개국 공군총장들은 2016년쯤 유럽통합훈련센터를 만드는 데 동의했다. 12개국이 2, 3개의 훈련센터를 만들어 공동으로 조종사를 키우자고 한 것이다.

유럽통합훈련센터는 어느 한 나라 공군이 운영할 수 없다. 12개국 공군이 모두 인정하는 훈련기업을 선정해 맡겨야 한다. 유럽통합훈련센터는 미국 공군의 훈련시스템에 맞먹는 큰 훈련센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센터에 훈련기를 납품할 수 있느냐는, 항공기 제작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유럽통합훈련센터 납품 경쟁에서 이기려면 먼저 싱가포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싱가포르는 조만간 고등훈련기에 대한 ROC를 결정하고 올 상반기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훈련회사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고등훈련기 제작사와 각각의 짝짓기를 한 다음, 그에 대한 입찰서를 내라고 요구한다. 싱가포르는 이 서류를 보고 내년 초 최종 낙점을 한다.

 

록히드마틴 쥐어짠 UAE

UAE의 결정은 싱가포르 결정 이후 나올 전망이다. 싱가포르가 첨단 기법을 동원해 참여 기업들을 쥐어짠다면 UAE는 구태의연한, 그렇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더욱 괴로울지도 모르는 방법으로 참여 회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UAE의 경쟁 구도를 알려면 먼저 UAE의 정치 상황부터 알아야 한다. UAE는 7개 도시에 사는 7개 부족이 모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7개 부족에는 각각의 왕이 있는데, 이 왕 중에서 가장 센 왕이 UAE의 대통령을 맡고, 나머지 부족의 왕들은 각료를 맡는다. 이 7개 도시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두바이다. 지금 두바이는 두바이 에어쇼와 ‘팜 아일랜드’ 등 상상을 초월한 인공섬을 짓고 멋진 건축물을 짓는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중동에서 나오는 석유의 가격을 말할 때 ‘두바이유(油)’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두바이는 석유가 나오는 곳이 아니다. 석유거래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두바이유는 중동산 석유를 통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UAE의 중심 도시는 이름을 날리는 두바이가 아니라 아부다비다. 우리에게 아부다비는 1987년 KAL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와 김승일이 폭약이 든 가방을 둔 채 KAL 858기에서 내린 곳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아부다비는 UAE에서 나는 석유의 8할 이상을 생산한다. 때문에 두바이를 제외한 다섯 부족은 아부다비에 경제를 의존한다. UAE의 전체 경제를 이끌다 보니 아부다비에 있는 부족의 왕이 UAE의 대통령을 맡는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하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두바이 아닌 아부다비가 실세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경쟁 관계에 있다. 그러나 UAE 전체를 먹여살리는 것은 아부다비이므로 UAE 안에서는 아부다비의 힘이 훨씬 더 세다. 두바이의 왕은 공군 대장인 동시에 UAE의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그러나 UAE의 국방정책은 UAE의 통합군 사령관이 결정한다. 국방장관은 실권이 없는 것이다.

UAE 통합군 사령관은 UAE 대통령 겸 아부다비 부족의 왕의 동생이 맡고 있다. 아부다비는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과 통합군사령관이라는 군사권력을 함께 쥐고 있는 것이다. UAE 대통령은 군사 업무는 동생인 통합군사령관에게 위임해놓았으므로 무기도입과 국방전략은 전부 통합군사령부에서 이뤄진다.

두바이는 두바이 에어쇼로 유명한데, 여기에서는 군용기 관련 계약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군용기와 관련된 계약은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IDEX(International Defense Exhibition·국제 방산전시회)에서 이뤄진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두바이 에어쇼가 워낙 유명하고, 지난해에는 UAE가 고등훈련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여 T-50을 두바이 에어쇼에 출품시켰다.

그러나 UAE는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다. UAE는 2009년 초로 결정을 미룬 것으로 보이는데, 전문가들은 두바이 에어쇼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다음에는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는 아부다비의 IDEX에도 T-50을 출품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UAE는 고등훈련기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몇 대를 도입할지, ROC가 무엇인지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물론 무기 도입 절차도 확립돼 있지 않다. 어찌 보면 매우 어수룩한 것 같지만 이 나라는 세계 최고의 전투기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의 애간장을 녹인 전력이 있다.

UAE는 이란으로부터 오는 압박감을 크게 느낀다. 과거에는 이라크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가졌다고 한다. 또 이웃한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의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보잉사로부터 70대의 F-15를 도입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유한 F-15는 F-15S로 불린다.

70대의 F-15S를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의식해 UAE는 신예 전투기 도입 사업을 추진했다. 한국은 FX 사업을 하면서 엔진 두 개를 가진 전투기만 입찰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UAE는 엔진 개수는 제한하지 않고 성능만을 놓고 경쟁시켰다.

 

F-15는 F-16보다 덩치가 크기에 훨씬 더 많은 무장을 실고 더 먼 거리까지 들어가 작전할 수 있다. UAE는 F-15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전투기는 모두 도전하라고 제안한 것. 그러자 록히드마틴은 기존의 F-15에 버금갈 정도로 멀리 날아가고 많은 무장을 실을 수 있는 새로운 F-16 개발에 착수했다. 그때까지 록히드마틴이 내놓은 최신 F-16은 국제적으로는 ‘F-16 블록 50’으로 불린 한국의 KF-16이었다.

록히드마틴은 새로 개발한 F-16을 ‘F-16 블록 60’으로 명명했는데, 이 F-16은 블록 50과 모양부터 달랐다. 블록 60은 블록 50에 비해 동체가 훨씬 더 뚱뚱했다. 더 많은 연료를 실어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였다. 엔진도 강화시켰다.

이러한 F-16 블록 60은 F-15보다 가격이 싼데 UAE는 F-16 블록 60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최종 계약을 할 때까지 수년을 끌었다. 그러는 사이 가격 인하를 비롯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받아내고 60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F-16 블록 60이라는 최신예기를 도입하는 만큼 UAE는 고등훈련기도 최신형으로 도입해 조종사를 양성해야 한다. UAE가 시작한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에는 영국 BA시스템스의 호크, 이탈리아 아에로마치의 M-346,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의 T-50이 도전했다. 세 기종 가운데 UAE는 성능이 처지는 영국의 호크를 탈락시켰다.


고등훈련기 도입을 국가발전 기회로

이탈리아 아에로마치 사의 M-346은 현재 개발 중인데도 UAE는 M-346을 탈락시키지 않았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아에로마치 사는 과거 MB-326과 MB-339라는 고등훈련기를 생산했는데, UAE는 이 훈련기를 도입했다. 아에로마치는 이 훈련기의 후속으로 M-346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UAE는 우리 시장인데 감히 한국이 쳐들어와?’가 UAE를 바라보는 아에로마치 사의 본심일 수 있다.

UAE는 아에로마치 사를 섭섭하게 할 수 없고, 어쨌든 M-346은 T-50과 경쟁할 정도라니 둘을 끝까지 경쟁시키려고 한다. 싱가포르는 무기 도입 문제에만 집중하나, UAE는 다른 산업까지 발전시키자는 전략을 선택했다. 한국과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당신네 고등훈련기를 사줄 테니, 당신네 나라가 갖고 있는 첨단 분야 기술을 싸게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에 따르면 UAE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요청했다고 한다. UAE는 인구가 적어 원전 1기만 있으면 필요한 모든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단 1기의 원전으로 모든 전력을 해결하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선택이다. 원전이 핵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가동을 멈추거나 고장으로 멈출 경우, UAE는 일순간 암흑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두바이에 건설한 인공섬의 초고층 건물은 엘리베이터부터 에어컨까지 모두 작동이 중단된다.


에이전트 쓰지 않는 록히드마틴

UAE에 거주하는 사람은 430만 정도인데, 이 가운데 외국인이 100만명 이상이다. UAE에는 전문기술을 가진 국민이 적다. 이 때문에 공무원을 비롯한 중요 자리를 외국인에게 맡겨놓고 있다. 이런 처지인만큼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먹고 살 수 있는 자산을 만들자는 것이 최대의 국가 목표다. 이러한 목표의 일부를 고등훈련기 도입을 통해 이루자는 것이 UAE의 의지다.

UAE가 운영하는 고등훈련기의 작전수명을 볼 때 UAE는 2009년 2월쯤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간 여유가 있으니, UAE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혹독하게 경쟁시키는 것이다.

UAE 사정에 밝지 못한 사람은 에이전트를 통해 UAE의 실력자에게 ‘베팅’을 하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UAE는 부국(富國)인지라 뇌물이 통하지 않는다. 에이전트 고용은 T-50 수출을 위해 공동으로 뛰고 있는 록히드마틴도 강하게 반대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록히드마틴은 T-50 수출을 위해 TFI(T Fifty International)이라는 법인을 함께 만들어 뛰고 있다. 과거 록히드마틴은 일본과 이집트에서 항공기를 판매하기 위해 그 나라 실력자에게 뇌물을 줬다가 발각돼 큰 곤욕을 치렀다. 일본에서는 다나카 총리에게 뇌물을 준 것이 ‘문예춘추’ 보도로 밝혀지는 바람에, ‘록히드 스캔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미국은 해외에서 똑같은 물의를 세 번 일으킨 기업에 대해서는 영업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3진 아웃제’를 채택한 것이다. 투 스트라이크를 당한 만큼 록히드마틴은 뇌물 제공을 초래할 수 있는 에이전트 고용은 절대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판매에 실패하더라도 에이전트는 고용하지 않겠다는 내부 원칙을 세운 것이다. 록히드마틴은 한국의 KFX 사업 때도 이러한 원칙 위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UAE 등 여러 나라에서 F-16 판매를 성공시켰다.

록히드마틴의 이러한 전통 때문에 에이전트 없이 수출에 나선 TFI의 결정은 T-50의 미래 시장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이다. OECD 회원국들은 뇌물 공여를 금지하는 뇌물방지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T-50을 수입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 OECD 회원국인지라, 한국은 이 협약을 잘 지켜야 한다.

한국은 에이전트 없이 두 시장에 모두 도전하고 있다. T-50의 수출 여부는 2009년 상반기에 싱가포르와 UAE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결론이 날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12대, UAE에서 40~60대의 T-50 도입이 결정된다면, 한국은 유럽통합훈련센터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된다.


미국 시장, 저가 전투기 시장 노려라

미국 공군은 T-38을 고등훈련기로 쓰고 있는데 2020년이면 작전수명이 다해 퇴역해야 한다. 이때쯤 미 공군은 F-35와 F-22를 다량으로 배치한 다음이므로 이러한 전투기를 몰 조종사 양성이 시급해진다. 최첨단인 F-35와 F-22 조종사를 양성하려면 T-50이 최고의 고등훈련기다.

미국은 자국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타국에서 개발한 것이라도 최종 생산만큼은 미국에서 할 것을 요구한다. T-50 개발에는 록히드마틴이 참여했으니 미군용 T-50은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생산한 부품을 가져가 록히드마틴이 최종조립하면 된다.

현재 한국 항공우주산업은 한국 공군이 주문한(일부는 주문 예정) 142대의 T-50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이 생산이 종료되기 전 싱가포르와 UAE에서 승전보가 날아온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52~72대를 추가로 수주하므로, 2010년대 후반까지 생산할 물량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통합훈련용 고등훈련기와 미국 공군용 고등훈련기로도 선정된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은 2020년대 후반까지의 물량을 확보하게 돼 항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잡게 된다.

각국이 요구하는 서로 다른 T-50을 설계하다 보면 T-50을 전투기급으로 개조개량하는 사업을 펼칠 기량을 갖출 수 있다. F-5는 미국이 가난한 우방국을 돕기 위해 만든 저가(低價)의 전투기다. 지금 F-5의 작전수명이 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국가들도 F-5를 대체할 저가의 전투기를 개발하지 않았다. 만약 한국이 T-50을 토대로 F-5를 대체할 저가의 전투기를 개발한다면 T-50 시리즈는 대단한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다.

그 시작은 싱가포르가 추진하는 새로운 방식의 무기도입에 적응하고, UAE가 추구하는 국가목표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2009년 T-50은 싱가포르와 UAE 양쪽에서 축포를 쏘아올릴 것인가.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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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기 2008.04.20 06:22

    이거 혹시 KAI에서 내보내는 보도자료 아닙니까? 좋은 기사이긴 한데...
    T-50이 왜 수출이 안될까에대해... 단점이 별로 지적되어 있지 않네요. 과장된 시장규모(분명 초음속 훈련기가 필요한 시장은 KAI에서 예상한 것보다 작을텐데..), 과장된 수출가능 목표/점유율(KAI는 점유율을 꾀 높이 잡고 있던데.. 마치 제가 처음 사업시작하면서 한국의 패션시장을 과반수 이상 점유하겠다는 말과 비슷...)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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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tterfly 2008.04.20 07:32

    뱅기님 그러고보니 또 다르게 생각되네요. 전 요즘 T-50수출소식이 언제 뜨나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뉴스라도 뜨면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이번 뉴스도 읽다보니 정보도 많은 것 같고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 너무 감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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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기 2008.04.20 11:15
    분명 좋은 기사이고 좋은 지적을 한 기사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요. 그걸 부정하는게 아니라 단점을 살짝 비켜가는 듯한 기사가 요즘 조금 나오고 있어서요... 분명 T-50 좋은 기체이고 수출되기를 어느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데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네요..
    항상 신문기사에는 T-50이 당장 수출될것 같이 나왔었잖아요. 됐다도 아니고 최고로 인정받고 될 것이다... 라고...
    오히려 그런기사를 안내보냈으면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안티로 돌아서지도 않았을듯..
    차라리 T-50 경합중.. 아니면 제안했다 그런식으로 있는 그대로를 말했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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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버그발견~ 미고자라드 2008.04.20 11381
123 요즘하고 있는 연구...잘 되고 있어서 좋긴한데... 6 file 카이리 2011.01.28 11395
122 엄청 피곤하네요... 1 file 카이리 2011.03.10 11437
121 더 서드 3 AKuMA | se-12 2008.04.18 1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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