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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vs. 제트 전투기 간의 공중전이 벌어진 첫 무대인 한국 전쟁이 벌어지기 1년 전인 1949년에 록히드(Lockheed) 사에서 개발해낸 최첨단 초음속기인 XF-90은 당시 미 육군항공군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최고의 전투기가 될 수도 있었다. 시대를 성큼 앞서간 기체였으나 몇 가지 결점을 지적 당하던 이 전투기는 너무 일찍이 군으로부터 무시당했고, 그 결과 2대의 시제기만 완성된 상태에서 더 이상의 개발은 중단되고 말았다. 만약 미군이 이 전투기를 신속히 전력화시켰다면 한국 전쟁에서 초음속 전투기를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은 전설로 전해지는 세이버 신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XF-90의 실제 비행 영상


# 제트엔진의 약점

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전선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군용기들은 비록 불안정한 약점을 깨끗이 해결하진 못했으나 항공기의 비행 영역을 크게 넓혀줄 혁신이 될 것만은 분명했다. 급속한 관련 기술의 진보에 힘입은 초기의 터보제트 엔진은 눈부시게 약진을 거듭했지만, 연료 소모율이 높아 항속거리가 짧은 단점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미 육군은 노스아메리칸 P-51 머스탱의 뒤를 이어 폭격기를 호위할 장거리 제트 전투기를 구상했으나 초기의 제트 엔진은 이 같은 결점 탓에 연비 문제로 인하여 일반적인 연료 탑재량으로는 1,000 km 이상 비행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장차 엄호 전투기라면 거대한 덩치에 연료를 잔뜩 싣고 쌍발 터보프롭 엔진을 탑재한 중전투기가 유망하다고 판단되었고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XP-81과 쌍발 제트엔진을 채용한 XP-83 같은 거대한 시제 전투기들이 1944년부터 1945년 사이에 시험 비행을 시작했으나, 이렇게 안이한 구상으로 만들어진 기체들은 아무래도 성능이 부족해 제식으로 채용될 가능성은 없었다. 제트 엔진의 성능은 탁월했지만 이것을 달면 비행거리가 짧아진다... 이런 기술적인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미 육군항공군은 1946년부터 맥도널 XP-88록히드 XP-90이란 후보기를 내세워 1,500마일(2,400 km)의 행동 반경을 가지며 지상 공격도 가능한 자체 중량 15,000파운드 미만의 사양을 가진 본격적인 장거리 제트 전투기의 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렇지만 "침공 전투기(Penetration Fighter)"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계획에서 요구한 행동 반경은 당시 기술로는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군은 보다 현실적인 900마일(1,400 km)의 행동 반경으로 눈높이를 낮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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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mm 기관포 3문과 탄창이 들어가는 건 베이


록히드 XP-90는 1946년 6월 20일에 시제기 구매에 관한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완성된 설계 초안이 없었다. 내부 용적이 커서 연료 탑재량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델타익 항공기 방안도 논의되었으나, 캘리포니아 공대에 의뢰한 풍동 테스트의 결과에 실망한 록히드는 그때까지 삼각날개에 관한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기존 설계를 개량하는 방안을 채택하여 리스크를 줄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자사의 P-80 슈팅스타에 후퇴 날개를 결합시킨 보다 전통적인 후퇴익 항공기가 고안되기에 이른다. 이 기체는 미 육군 항공군이 미 공군으로 독립된 후인 1948년 6월 11일에 XF-90으로 형식 번호가 변경되었다.


낮게 배치된 후퇴날개의 앞전 후퇴각은 35도로 날카롭게 뒤로 젖혀졌고, 뒷전에는 파울러 플랩(Fowler flap)과 앞전 슬랫(leading-edge slat)이 설치되었다. 수직 꼬리 날개에 중간 부분에는 수평 미익이 결합되어 배치된다. 에어 인테이크는 동체 옆에 있고, 날개 끝에는 낙하식 연료탱크를 추가하게끔 만들어 항속거리를 확장시켰다. 이 전투기의 엔진은 추력을 대폭 늘려줄 애프터버너의 납기를 맞추지 못해 처음에는 후연기가 없는 웨스팅하우스 J34-WE-11(추력 1,361kg)을 채택하였고, 나중에는 후연기를 갖춘 J34-WE-15(추력 1,905kg)를 장비한 XF-90A가 완성되어 1950년 5월 20일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실용기를 추구했던 록히드 사는 XF-90의 인테이크 아래쪽의 공간에 건 베이를 마련하여 6문의 20mm 기관포와 탄창을 집어넣었다. 주날개 아래의 하드포인트에는 2,000파운드의 폭장을 하거나 8발의 HVAR 로켓을 장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윙팁 연료탱크까지 합쳐 1,665갤런(6,308리터)의 연료와 무장을 모두 실은 XF-90은 14,118 kg에 달해 그때까지 록히드에서 만든 전투기 중에서 두 번째로 무거운 기체였다. ​이런 무게 때문에 XF-90은 쌍발 엔진을 탑재하고도 추중비가 22%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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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ST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표피가 눈부신 XF-90


# 강철로 만든 전투기

XF-90의 원형 1호기 46-687는 1949년 6월 3일에 이미 록히드의 주임 테스트 파일럿 토니 르비어(Tony LeVier : 1913~1998)의 손에 의해 에드워즈 공군기지(Edwards AFB)에서 첫 비행을 마쳤다. 토니는 천성적으로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활주로에 내려앉은 다음 스탭들에게 이 비행기가 힘이 딸려 이륙거리가 너무 긴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으로 추력 부족 상태인 것을 단숨에 눈치챘다고 강조했다. 이 시제 전투기는 노스 아메리칸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고 있던 2차 대전의 트리플 에이스 죠지 웰치(George Welch : 1918~1954)도 몰아보았는데, 그의 의견 역시 가속이 좋지 못하고 둔하다고 평가를 내렸다. 


그 무렵의 항공 평론가들은 예리한 기수와 뒤로 젖힌 날개를 가진 XF-90이 공격적인 모양새로 말미암아 세계 최초의 실용 초음속기로 이름을 남길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 강도 확보를 위해 특수 강철 - 니켈크롬강(chrome-nickel steel)으로 순철의 3배나 되는 강도를 보이는 재료지만 무거운 것이 결점이다 - 로 만든 프레임과 곳곳이 고강도 두랄루민(75ST)으로 만들어진 원형기는 중량이 너무 무거웠고, 12G 이상의 급기동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필요 이상의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추력이 약한 엔진이 조합되었으니 이 전투기의 실제 비행 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경쟁 후보에 비해 공허 중량이 50%나 더 무거운 XF-90은 여전히 음속을 돌파할 수는 없었고, 고속에서 조종 반응이 느려 전투기로 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강하 비행을 포함한다면 이 전투기는 시험 비행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1950년 5월 17일을 필두로 무려 15번이나 소리의 벽을 돌파했었다. XF-90이 세운 최고 속도 기록은 완만한 강하 중에 달성한 마하 1.12였다. 


1950년 9월까지 비행 실험은 계속되었으나, 쓸데없이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원형기는 또 다른 후보 XF-88과 함께 미 공군 자재사령부(USAF Air Materiel Command)의 요구사항에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두 후보 모두 탈락시키는 것을 결정한 미 공군은 인도받은 2대의 시제기를 써먹을 곳을 찾다가 2호기 46-688는 1952년에 네바다 사막에서 실시된 핵실험에 표적기로 써버려 파괴되어 버린다. 다소 놀라운 것은, 강철로 만든 억센 기체는 지근거리에서 터진 3회의 핵폭발에도 불구하고 2호기의 동체와 날개는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꼬리가 떨어져 나간 XF-90은 도색이 타버리고 캐노피는 산산조각 나고 착륙장치까지 떨어져 나갔어도, 12.7mm 리벳으로 죄인 동체와 날개는 건재함을 보여주어 실험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호기는 NACA 연구소에서 구조 강도 테스트용으로 쓰이며 온갖 조건에서 학대를 당했지만 역시 항공기라곤 믿기지 않은 정도로 터프한 내구성을 보이며 한동안 견뎌냈으나, 1953년에 완전히 파괴되어 스크랩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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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한 구조의 XF-90은 무록 건호에 동체 착륙한 뒤에도 큰 수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내구성을 보여주었다.


# 귀중한 교훈

이 전투기의 개발을 책임졌던 설계자 켈리 존슨(Clarence Leonard "Kelly" Johnson : 1910~1990)은 XF-90의 실패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록히드 엘렉트라에서 허드슨 경폭격기로 이어지는 시리즈와 P-38 라이트닝, 슈팅스타를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그로서는 처음 겪은 실패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곧바로 태세를 가다듬은 존슨 주임은 거액을 들여 스컹크 웍스 안에 초음속 풍동을 설치하고 XF-90의 디자인에서 결함을 찾아내는 길고 지루한 작업에 달라붙었다. 장차 군용기에 초음속 시대가 활짝 열린 만큼,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를 노렸던 XF-90의 실패 요인을 정확하고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회사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추가 연구를 통해 켈리 존슨과 부주임 윌리스 호킨스(Willis M. Hawkins : 1913~2004)는 초음속 비행에서 반드시 후퇴익만이 솔루션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고, 에어 인테이크의 효율적인 설계가 조파저항 감소에 필수적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이처럼 "죽은 자식 X랄 만지기"로 알아낸 공기역학적 지식들은 훗날 그가 세계 최초의 마하 2급 전투기인 F-104 스타파이터를 개발할 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간 F-90 계열 전투기였으나, 미 공군은 그 뒤를 이어 리퍼블릭 XF-91컨베어 XF-92를 발주하여 초음속 전투기의 개발을 계속 채찍질했다. 미 공군의 형식 번호 중에서 93~97까지는 기존 항공기의 개조형에 할당되었고, 98, 99는 미사일에 주어진 탓에 실용 초음속 전투기로 처음으로 채택된 F-100 수퍼 세이버가 센튜리 시리즈의 포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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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A T A
형식 / 명 칭  쌍발 단좌 시제 전투기 / Lockheed XF-90
전장 / 전폭 / 전고  17.12 m / 12.20 m / 4.80 m
익  면  적 32.00 m²
초 도 비 행  1949년 7월 3일
탑 승 인 원  1명
공허중량 / 임무중량  8,200 kg / 12,363 kg
최대이륙중량  14,118 kg
동 력  Westinghouse J34-WE-15 터보제트 엔진 X 2기 (각 4,100 lb)
최 대 속 도  1,075 km/h
순 항 속 도  761 km/h
항 속 거 리  3,680 km
상 승 한 도  11,890 m
상 승 률  1,692 m/min.
무   장  20mm X 6문 / 5인치 로켓 8발 또는 2,000파운드의 폭장
생 산 수  2 대
비   고  XF-90(46-688)의 잔해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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