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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영국 미들섹스주에서 설립된 항공기 제조업체인 페어리(Fairey Aviation)사에 의해 개발된 복합 헬리콥터페어리 로터다인(Fairey Rotodyne)은 당시만 해도 이런 형태의 실용기가 없었던 탓에 세계 최초의 VTOL 항공기로소개되면서 항공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기체였다. 수직이착륙을 위해 고안된 특수한 구조 때문에 일반 고정익 여객기에 비하면 탑재량과 속도 면에서는 뒤처졌지만, 활주로가 필요없는데다 승객들을 공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필요한 착륙 장소에 내려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어필했었다. 야심찬 시도로 탄생한 로터다인은 항공 역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했으나 회전익기라는 한계를 넘지 못해 연비가 나빠 거리당 운항비가 높아지는데다 거주 지역에 이착륙할 때의 소음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고, 조종성도 개선할 여지가 있어서 결국 여객기 시장에 진입할 수는 없었다. 


Rotodyne.jpg

# 비행 원리


로터다인의 날개에 장착된 엔진은 클러치를 통해 전진 추력을 일으키는 프로펠러를 구동시킬 뿐만 아니라 이륙할 때에는 출력의 대부분은 압축기를 회전시켜 발생시킨 압축 공기에 연료를 혼합에 태운 연소 가스를 로터 끝에 달린 로터 팁제트로 분사하여 직경 27미터가 넘는 거대한 로터를 회전시킨다. 이때 4장의 로터 블레이드 끝에 설치된 노즐에서는 각각 1,000 파운드의 추력을 얻을 수 있어 219 m/s라는 회전속도를 얻을 수 있는데, 로터다인은 여기서 얻어진 양력으로 수직으로 떠오르게 된다. ​ 


팁제트 방식의 로터는 토크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어 이 기체는 일반 헬기와는 달리 테일 로터가 없었지만, 페어리 기술진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요잉 제어를 하게 만들었다. 수직이착륙 모드 상태에서 조종사가 러더 페달을 밟으면 양쪽 프로펠러의 피치가 바뀌며 수평으로 기체를 선회시키는 방식이었는데, 이것 또한 페어리 개발진들을 지휘한 조지 히슬롭(George S. Hislop)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조종 장치였다. 


이륙한 후에는 엔진 출력을 프로펠러와 연결된 클러치로 전달해 모두 프로펠러를 돌리는데 이용되는데, 말하자면 이때는 로터에는 전혀 엔진의 파워가 전달되지 않고 오토자이로처럼 회전하며 이때부터는 대부분 주날개의 양력에 의존하여 수평 비행을 하게 된다. 로터는 전혀 엔진 출력이 전달되지 않고 전방에서 기류를 받아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하게 되는데, 이런 오토 로테이션으로 양력을 일으켜 짧은 주날개를 보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비행 방식을 채택한 로터다인은 전진 추력을 모두 로터에 의존하는 기존의 헬리콥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항속거리도 길었다. 



로터다인의 초기 시험비행


# 구조

페어리 로터다인은 이처럼 고정익기의 장점과 회전익기의 특징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구상으로 만들어졌으며, 등장한 이후 이런 형태의 항공기를 가리켜 자이로다인(Gyrodyne)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동체도 여객기와 군용 수송기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동체 내부에 배치된 40개의 좌석은 쉽게 탈착이 가능했으며 모두 떼어내면 동체 후방에 마련된 크램쉘 도어를 이용하면 군용 VTOL 수송기로도 쓸 수 있었다. 두랄루민으로 만든 메인 로터는 내부에 제트 분사 개스를 전달해주는 강철제 튜브가 관통하고 있었고, 윙팁의 노즐은 고열을 견디기 위해니모닉 합금(Nimonic 80)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로터다인에는 당시만 해도 처음 보는 기술이나 독자적으로 고안되어 만들어진 시스템들이 많아서 원형기의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페어리 측의 주장에 의하면, 전용으로 개발된 네이피어 이랜드(NapierEland)엔진을 제외하고도 £710,000 (2020년 기준 £16,628,658 = 260억원)라는 거액이 프로토타입인 XE521호기를 만드는데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GettyImages-613463406.jpg 제작 중인 프로토타입


 VTOL-rotorcraft-rotodyne.jpg


# 평가와 시범

로터다인은 1957년에 테스트 파일럿 론 제랄티(W. Ron Gellatly)존 모톤(John G.P. Morton)이 타고 처음 떠올랐다. 수직이착륙 테스트를 시작으로 호버링, 활주 이륙 테스트를 거친 XE521은 1958년 4월 10일에는 드디어 수직으로 떠올라 수평비행으로 전환한 다음 다시 수직으로 착륙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959년 1월 5일, 페어리 로터다인은 100 km 폐쇄 순환 코스를 평균속도 307.2 km/h로 날아 수직이착륙기 분야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같은 해판보로(Farnborough)와 파리에서 열린 국제 에어쇼에 출품된 로터다인은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수직이착륙과 324 km/h의 속도로 수평비행하는 시범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30미터 길이의 철교를 들어올리는 시범까지 펼쳐보이며 만능에 가까운 놀라운 능력을 마음껏 자랑했다. 페어리 로터다인은 관람객들에게 "날으는 버스"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동시에 그것은 "날으는 크레인"이기도 했다. 59년 에어쇼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페어리 로터다인으로,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고 실감하게 된다. ​


이 광경을 지켜 본 영국 유럽 항공(British European Airways : BEA)은 6대의 로터다인의 구매를 위한 상담에 들어갔고, 영국 공군도 군용 수송기 버젼 12대의 구입을 문의해왔다. 일본 항공(JAL)은 도쿄 항구와 오사카를 오가는 노선에 이 영국제 항공기를 투입하고 싶어했으며, 미국에서 도시와 도시를 헬리콥터로 오가는 지역 항공사인 뉴욕 항공(New York Airways)이 15대의 구입을 희망했는데, 페어리 측은 3,000만 달러의 가격을 불렀지만 미국인들은 기꺼이 이에 응했을 정도로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또한 국산 항공기만 고집하던 미 육군도 파리 에어쇼의 시범을 보곤 로터다인의 범용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미 육군은 일단 200대의 로터다인을 필요로 했지만 이 수량은 전부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내 헬기 메이커인 카만 헬리콥터를 통해 면허생산을 하는 방안에 관해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Johnny Morton - Ron Gellatly.png 

완전히 새로운 회전익기를 무사히 비행시킨 죠니 모톤(좌측)과 론 제랄티(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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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 비행 중인 로터다인의 로터는 오토자이로 처럼 풍력으로 돌게 된다. 


# 높으신 분들

1957년에 영국 국방장관에 취임한 던컨 샌디스(Duncan Sandys)는 항공성 장관도 겸임하게 되면서 국내 항공업계의 대지각 변동을 일으킬 1957 국방백서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행정 명령에 따르면 영국 공군은 전투기 보다 미사일이 요격 임무를 주로 맡게 될 것이며, 폭격기의 공습 임무도 지대지 미사일로 대체할 것이라면서 미사일 만능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시종일관 밀고 나갈 것을 밝히고 있었다. 또한 현재 개발 중인 모든 항공기를 종류를 막론하고 전부 새롭게 타당성 평가를 하여 기준에 미달되는 기종은 개발과 생산이 중지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여러 군소 항공업체들을 대형 메이커들에게 흡수 통합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는데, 여기에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페어리 사도 그 대상이었다. 이 정책에 의거하여, 1960년까지 영국 항공업체들은 다음과 같이 이합집산을 명령받았다. ​


잉글리쉬 일렉트릭(English Electric)브리스톨(Bristol Aeroplane Company), 빅커스-암스트롱(Vickers-Armstrong), 그리고 헌팅(Hunting Aircraft)사는 영국 항공기 제작사(British Aircraft Corporation : BAC)라는 하나의 법인 아래 뭉치게 되었다.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던 호커 사는 이미 암스트롱 위트워스(Armstrong Whitworth) 애브로(Avro), 글로스터(Gloster)사를 집어삼킨 후였지만 드 해빌랜드(de Havilland)블랙번(Blackburn Aircraft), 폴랜드(Folland)를 흡수해 호커 시들리(Hawker Siddeley)로 재편성되었다. 반면 헬리콥터 제작사들은 웨스트랜드(Westland Aircraft)사가 중심이 되어 손더스-로우(Saunders-Roe)브리스톨 헬리콥터(Bristol helicopter), 그리고 페어리사가 하나의 기업으로 뭉쳤다. 단, 이 시기에 호버크래프트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내놓은 손더스-로우는 빅커스 수퍼마린(Vickers Supermarine)을 인수하여 영국 호버크래프트(British Hovercraft Corporation)라는 기업으로 일부 독립하게 된다. ​ 


"도축"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샌디스의 항공업계 재편성은 무자비했다. 한때 영국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핸들리 페이지(Handley Page)볼튼 폴(Boulton Paul), 독특한 기술력을 선보이던 마일즈(Miles Aircraft)는 물론이고 비행정 분야에서 돋보이던 쇼트(Short Brothers)사도 용서없이 흡수되었다. 이런 마당에 오스터(Auster)스코티쉬 항공(Scottish Aviation)같은 눈에 잘 띄이지도 않던 군소 제작사들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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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타입에만도 엄청나게 쏟아부은제작비를 감안하면 매우 많이 들어갈 것이 분명한 생산 비용을 정당화시킬 만한 가성비 문제를 지적받은 로터다인도 정리 대상 기종에 올랐다. 던컨 샌디스는 새로 취임한해럴드 맥밀런(Harold Macmillan)수상과 함께 로터다인의 추가 개발을 중지시켜려고 했으나, 조달청 장관을 맡고 있던오브리 존스(Aubrey Jones)는 이 신기술의 총아는 반드시 완성되어야만 한다며 버티고 있었다. 그는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다른건 몰라도, 이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것만큼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린 지금 돈방석 위에 한발을 올려놓고 있단 말이오" ​ 


일단 연명을 하게 된 로터다인은 계속 시험 비행을 진행하게 된다. ​이 시점까지 페어리 로터다인은 120시간 동안 350회 비행하는 동안거의 1,000명을 태웠으며,한 건의 사고도 없이 230회의 전환비행을 수행했다. 1958년에 정부는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 자금 조달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다. 이 문제는 1958년 6월 6일에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란에게 군수성 장관오브리 존스가이 프로젝트는 죽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며 숨통이 트이게 된다. 또한 로터다인을 처음 구입하여 런칭 고객이 될 BEA의 도입이 상당히 중요했지만, 그동안 주판알을 튕겨본 이 항공사는 성능과경제성 및 소음 기준에 대한 보증이 될 때까지구매를 거부했다. 페어리가 웨스트랜드에 합병된 직후, BEA는 400만 파운드의 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개발 작업은 계속 될 수 있게 되었다. 


​원형기를 이용한 비행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개발진들은 네이피어 이랜드 엔진에 대한 불만이 점점 더 커졌는데, 이것은 엔진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거의 없이 방치해 둔 네이피어 기술진 탓이었다. 확장된 48석 모델을 실현시키려면 3,500마력의 이랜드 N.E1.7 엔진이 필요했고, 페어리 측은 이 모델을 만드는데 필요한 700만 파운드 (£163,944,516 / 2,554억원)의 제작비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300만 파운드가 엔진에 쓰일 것이어서 타당성이 충분한 의견이었다. BEA는 특히 66명을 태울 수 있는더 큰 모델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페어리 기술진들은 처음 수령한 엔진의 카탈로그 성능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필요한 동력을 얻기 위해 연료에 이런저런 혼합물을 섞어서 억지로 파워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부작용으로 안그래도 시끄럽던 소음이 더욱 심각 해지고 연비는 떨어졌다. 이랜드 엔진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페어리 사는경쟁 업체인 롤스로이스 타인(Rolls-Royce Tyne)엔진을 채택하여 더 큰 로터다인 Z(Rotodyne Z)를 띄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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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다인 Z의 설계는 5,250축 마력의 타인 엔진을 장착하면 순항 속도가 370 km/h에 57~7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화물만 실을 경우 8톤을 운송 할 수 있었다. 동체의 사이즈와 후방 도어의 크기는 영국군 표준 차량과 일부 전투기 동체가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질 것이고, 동체에 싣지 못하는 대형 화물은 외부에 슬링하여 매달고 날아갈 수 있을 예정이었다. 로터다인 Z의 총중량은 26,559 kg, 확장된 로터 직경은 33.2미터, 날개 폭은 22.86미터로 정해졌다.

그러나 타인 엔진도 초기 상태 그대로는 출력이 부족한 것임이 속속 밝혀졌다. 군수성은 로터다인 Z와 타인엔진의 강화에 필요한 비용의50%를 지원해줄 것을 약속했다. 페어리 측은 지원을 얻기 위해 기울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 공군의 발주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공군은 헬리콥터 같은 지원기 보다는 가상 적군의 핵무장 폭격기를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문제에 역점을 두고 요격 무기 분야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었다.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개발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원형기의 무게는 계속 무거워졌다.그러나 고질적인 소음 문제는 해결 될 출구가 보이지 않고 더 커지고만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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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다인의 개발비를 폭등시키는데 큰 몫을 한 네이피어 이랜드 엔진

로터다인의 개발비는 웨스트랜드와 정부가 절반씩 지출하고 있었지만, 개발을 완료하고 생산 라인을 스탠바이 시키기 까지 추가로 9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개발사가 영국 정부에 18대, 공군에 12대, 그리고 BEA에는 6대에 해당되는 견적서를 보내고 난 후, 정부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지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응답 해왔다. 따라서 1962년 2월 26일에 로터다인의 공식 개발비는 끊어졌고, 웨스트랜드 측에서 홀로 마무리 지어야 할 상황이 된다. ​ 


로터다인을 완전히 끝장낸 것은 BEA가 소음 문제를 핑계 삼아 발주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웨스트랜드의 경영진들은 비록 로터다인이 회전익 항공기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기는 했을지 몰라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추가 개발에 투자할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버린 후, 정부 재산인 로터다인의 원형기는 마찬가지로 취소된 브리스톨 브라바존(Bristol Brabazon)과 같은 방식으로해체 되고 스크랩 되었다. 다만동체 일부 구획과 로터 마스트와 메인 로터는 남겨졌고, 이 항공 유물들은 웨스턴 수퍼메어(Weston-super-Mare)에 있는 헬리콥터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회전익기를 모아놓은 박물관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 장소에서도 로터다인의 부품들은 자랑할만한 전시물로 취급되고 있다. 



페어리가 제작한 홍보 영화 


D A T A
형식 / 명 칭 복합 회전익기
전장 / 전폭 / 전고 17.9 m / 14.17 m / 5.76 m
로터 직경27.43 m
회전 면적 591.0 m2
탑승인원 승무원 : 2명 + 승객 48명
초도비행 1957년 11월 5일
중량 9,927~17,000 kg
동 력 네이피어 이랜드(Napier Eland) N.El.7 터보프롭 엔진 (2,800 hp) 2기
/ 팁제트 엔진 (1,000 lbf) 4기
최 대 속 도 343 km/h
항속거리 830 km
순항고도 4,000 m
생산수 1 대
  • profile
    이골 2020.06.19 19:19

    오오.. 버스로 쓰면 딱 좋은 사이즈네요 에어택시보다 더 큰 에어버스? ㅎㅎ

  • profile
    쿵디담 2020.06.20 16:16

    아니!? 어떻게 저와 똑같은 생각을...?

    찌찌뽕! 

  • ?
    marine 2020.06.20 01:43

    엔진 기술도 발달했고 수요도 충분할 텐데 오히려 지금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요? 대도시 주변을 운행하는 비행기 타기에는 좀 가깝고 차로가기에는 좀 먼 애메한 거리가 있을텐데요. 그런곳에서 운행하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주문양으로 봐서는 항공회사들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던것 같네요.

  • profile
    쿵디담 2020.06.20 16:18
    지금은 저런 자이로다인 방식 보다는 더 진보되고 속도가 훨씬 빠른 틸트로터 방식이 더 유망하지요 ^^
  • profile

    틸트로터 방식이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이착륙도 위험하고 무엇보다 저만큼의 승객을 나르기엔 파워가 약하지 않나요? 오히려 요즘 틸트로터는 지는 세대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유로콥터도 자이로 방식은 아니지만 오히려 모양이 비슷한 헬기를 테스트 중이기도 하구요.

    유로콥터 X3

    Eurocopter-X3-777x437.jpg

  • profile
    쿵디담 2020.06.24 21:33
    아, 오히려 유로콥터 X3는 미 공군 심사에서 탈락하고 이제 연구지원도 끊어져서 끈 떨어진 연이 되어버렸습니다 ^^ㅋ
    반면 틸트로터 연구나 개발은 여러가지가 추가로 진행되고 있지요. 대표적인 미군의 차세대 회전익기 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V-280 밸러라든가 벨 사가 항공택시로 개발하고 있는 벨 넥서스 같은 기체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 ?
    Yuri 2020.07.24 15:36

    제가 이 희귀템을 알게 된게 무려 1980년대 초딩때 인데요(연식 나온다...), 그때 어머니가 무심코 사주신 자석식 필통(요즘은 이런거 없죠?)의 껍데기에 있던 그림이 바로 이 기종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거라 저는 이게 무슨 SF 상상 속의 항공기인줄로만 오래동안 알고 있다가, 아주 아주 나중에 커서 우연히 무슨 자료 보다가 이게 떡하니 나오는거에요. 어찌나 반갑던지...

    초딩때 필통에 있던 걸 수십년간 기억한걸 보면 그때부터 항덕 기질이 있었던거 아닐지..ㅎㅎ

  • profile
    뱅기 2020.07.26 08:04
    그당시 저런 항공기 사진은 어디서 얻어서 필통에 인쇄했을까요. 기억력도 엄청나시네요. 저는 그 자석식 필통에 야마토인지 그와 비슷한 전함인지가 있었던것 같은데...
  • ?
    Yuri 2020.07.26 15:36
    진짜 희한해요. 한국에서 유럽 비행기는 거의 관심 밖인데, 그것도 꼴랑 딱 한대 만든 것을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어디서 봤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제품에 넣을 생각을 했는지....
  • ?
    bluedove 2020.07.31 08:50
    그 무렵 공중파 TV 프로그램들 처럼 일본 제품을 무단 복재한 것이였겠죠.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 일본 프로그램 무단 카피켓임을 알았을 때의 분노란... -_-;
  • ?
    marine 2020.08.01 04:04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요? 포멧만 카피한게 아니고 내용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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