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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제기를 위한 실험기로 태어나다 .

1950년대 초, 냉전의 골이 점차 깊어지던 무렵 영국 공군은 음속의 3배 이상의 스피드로 적성국가 상공을 통과하며 지상을 낱낱이 촬영 가능한 초고속 정찰기의 개발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 요구는 곧 공군 제안서(Operational Requirement) OR.330으로 정리되어 발표되었고, 이에 따라 애브로 730(Avro Type 730) 같은 기체가 도면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속기를 제작하려면 먼저 마하 2 이상의 고속 비행시 필요한 데이터 수집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이 요구는 또다른 제안서를 만들게 했는데, 이것이 1953년 발행된 제안서 ER.134T라는 실험기 제작 의뢰였다. 이 항공기는 장시간을 마하 2로 비행하면서 초음속 항공기의 공력 가열과 기타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파악할 목적으로 만들어질 것이었다. 열역학 계산에 따르면, 이 실험기의 표면 온도는 섭씨 300도 이상 뜨거워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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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브로 730의 상상도

공군성이 낸 이 제안서는 영국내의 여러 항공기 제작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앞으로의 비행은 초음속 순항이 확실시되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고속 비행 분야의 선구자가 된다면 장차 민간기와 군용기를 막론하고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 본 것이었다. 이 제안에 응모한 메이커로는 브리스톨, 빅커스, 핸들리 페이지, 드 해빌랜드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있었지만 공군성은 1953년 2월에 전금속제 항공기를 오래 다루었고 엔진 개발 능력도 인정받던 브리스톨(Bristol Aeroplane Company) 사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브리스톨 사는 이 기체를 브리스톨 타입 188(Bristol Type 188)로 명명하고 3대의 원형기를 제작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1기는 지상에서 필요한 테스트 베드이며, 나머지 테일코드 13518호기와 13519호기는 비행 시험용이었다. 1954년 1월에 맺어진 이 계약에 따라 2기는 기체 번호 XF923과 XF926가 주어졌고, 비행 허가도 떨어졌다. 항공성은 그외에도 아브로 사에게 730 정찰 폭격기 개발 지원을 위해 3기를 발주했는데, 그 기체 번호는 XK429, XK434, XK436였다. 그러나 1957년 방위 백서에서 애브로 730 계획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 계약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데이타 수집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어서 타입 188은 고속 실험기로서 개발이 계속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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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해빌랜드 자이론 주니어

#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운 비행 영역에 도전할 이 기체의 제작은 선진성과 안전성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기존과는 다른 제작법이 개발되어야 가능했다. 먼저 동체의 재료로 여러 가지 소재가 검토되었는데, 두 가지 특수강이 선택되었다. 티타늄을 안정시킨 18-8 오스테나이트 강(Austenitic Steel)과 그 무렵부터 개스 터빈용 합금으로 각광받고 있던 12% 크롬을 첨가한 스테인레스 강이었다. 이 재료는 경도는 춘분했지만 부피대비중량이 무거워 항공기에 쓰이는 것은 처음이었고, 신합금인만큼 제작이 시작되기 전에 충분한 양이 생산될 필요가 있었다. 한 때 영국에서는 이 항공기의 제작에 필요한 스테인레스 스틸 재료 독점 때문에 가정집의 주방에 쓸 냄비가 품귀 현상을 빚었다는 말이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12%의 크롬을 첨가한 스테인레스 스틸은 하니컴(벌집) 구조를 채용해 구조 강도를 높이는 한편, 일체의 도색은 하지 않았다. 조립에는 전통적인 리벳 접합 대신 아르곤 개스를 이용한 아크 용접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생소한 제작법을 도입했기 때문에, 동체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진도가 좀체로 나가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하청 업체로 기체 제작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 사 같은 경우는 오히려 브리스톨의 제작진에 대해 기술 지도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타입 188의 주익은 극도로 예리하게 가공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타입 188의 날개는 관람객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날개 앞뒷전을 둥글게 갈아냈지만, 만들어질 무렵의 날개는 마치 스테인레스제 칼날과도 같아서 사과도 사각사각 깎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조립공 한 명은 부주의로 인해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또 하나 제작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스테인레스 스틸은 무겁다는 점이었다. 완성된 기체는 연료를 채우면 무게가 4만 파운드에 달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타입 188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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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시험 중인 타입 188

개발진들은 고열에 견디도록 특별히 석영을 녹여서 첨가해 만든 캐노피와 조종석 냉각 시스템을 설계해야만 했고 초음속 비행시 엔진에 유입되는 공기량을 최적화하기 위해 가변식 에어 인테이크도 연구해야만 했다. 또 엔진은 동체가 아니라 양면 볼록형 단면(biconvex section)을 가진 날개 중간에 장착되는 형상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엔진을 이렇게 배치하자, 동체는 글자 그대로 연료를 채운 스테인레스제 보온병과 똑같은 구조가 되었다. 

브리스톨 188에 사용될 엔진은 원래 롤스로이스(Rolls-Royce)에서 만든 제품이 내정되었지만, 그 밖에도 여러 엔진과 조합이 검토되었다. 롤스로이스 에이본(Avon) 200, 동사의 AJ.65 시리즈, 드 해빌랜드 자이론 주니어(De Havilland Gyron Junior) 같은 엔진도 시험되었다. 그 결과, 1957년 자이론 주니어 DGJ10R의 채용이 결정되었다. 이 엔진은 추력 10,000 lbf(44 kN)에서 애프터버너를 켜고 해면 고도에서 추력 14,000 lbf (62 kN), 고도 36,000 ft (11,000 m)에서 추력 20,000 lbf (89 kN)를 낼 수있어 마하 2의 스피드를 달성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자이론 주니어 엔진은 훗날 초음속 로켓 요격기 손더스-로우 SR.177에도 쓰이기 위해 추가 개량이 진행되어 가변식 후연기가 통합되었다. 하지만 이 엔진을 브리스톨 188에 탑재하자 전형적인 항속 시간은 25분에 불과해 고속 연구를 위해서는 부족했다. 수석 테스트 파일럿 고드프리 L. 오티(Godfrey L. Auty : 1921~2001)는 브리스톨 188이 천음속에서 초음속으로 넘어갈 때는 부드럽지만, 자이론 주니어 엔진은 그 이상의 속도에서 지나치게 추력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기체에 피칭과 요잉이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공기 역학 및 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스케일 모델이 제작되었다. 이 모형들은 로켓의 첨단에 설치된 다음 시험을 위해 왕립 항공기 연구원(Royal Aircraft Establishment : RAE) 관할의 애버포스(Aberporth) 사격장에서 발사하면서 수정해나갔다.

누군가가 휘황찬란한 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이 시제기를 본 다음 "스테인레스 원더(Stainless Wonder : 나무로 만든 걸작 쌍발 전폭기 모스키토의 별명 Wooden Wonder를 빗댄 별명)"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정작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개발 스탭들은 두터운 장막안에서 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기묘하게 생긴 작품에 대해 "불타는 연필(Flaming Pencil)"이라는 자조섞인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브리스톨 188의 개발과 시험비행 영상


 # 테스트 돌입! 그러나...    

​1960년 5월, 1호기가 가열 및 비가열 구조 시험을 위해 판보로의 RAE에 납기되었다. 이듬해 4월 26일에는 XF923가 전출력 상태로 지상 활주 테스트를 했지만, 문제가 생겨 처녀비행은 1962년 4월 14일로 미루어졌다. XF923의 초도비행 시점에서는 아직 브리스톨 사의 소유물이었으며, 공군성에는 인도되지 않았다. XF926은 XF923의 엔진을 사용하여 1963년 4월 26일에 처음 비행했다. XF926은 비행 프로그램을 위해 RAE 베드포드에 넘겨졌다. 타입 188은 이곳에서 51회의 시험 비행을 실시했고, 고도 36,000 ft (11,000 m)에서 최대 속도 마하 1.88 (2,300 km/h)를 기록했다. 이 속도는 당시까지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인 항공기 중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그러나 188은 운용 고도에 도달하기 위하여 연료의 70%를 써버리기 때문에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시간은 최대 48분에 불과했다.
 
비행 시험 중에 수집된 데이터는 기내에 실린 기록장치에 입력되는 동시에 지상 스테이션에 전송되었다. 따라서 지상의 관제소에 있는 파일럿이 비행중인 테스트 파일럿에게 조언을 줄 수 있었는데, 이 시스템이 발전되어 현재의 데이터 링크 시스템이 되었다. 이 같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계획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혔다. 가장 큰 문제는 연료 소비량이 지나치게 많아 브리스톨 188 제작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공력 가열을 평가할 수있을 정도의 시간 동안 초음속 비행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연료 누출 문제도 있었고, 계획 속도인 마하 2에 도달할 수 없었으며 이륙 속도가 자그마치 300 mph(483 km/h)인 특성도 테스트 비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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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브리스톨사는 188 계획을 포기했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 자료는 훗날 콩코드의 개발에 큰 기여를 했다. 콩코드는 스테인레스 스틸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에 기존의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알루미늄을 사용했고 속도는 마하 2.2로 억제되었다. 자이론 주니어 엔진은 영국 최초의 초음속 항공기용 터보제트 엔진이었지만 이후 브리스톨 올림푸스 엔진 개발에 기여했다. 나중에는 브리스톨이 아닌 롤스로이스에서 양산된 올림푸스 엔진은 콩코드와 BAC TSR-2에도 채용된 중량 대비 최강의 엔진이었다.

실험기로서나 기술 실증기로서나 결코 성공적인 항공기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 브리스톨 188이었지만, 이 기체는 1964년에 미국에서 XB-70 발키리 초음속 폭격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초음속 항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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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열을 위해 석영 유리로 덮힌 캐노피를 가진 브리스톨 188의 조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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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조의 슬립 타입 에어브레이크

# 남겨진 브리스톨 188

브리스톨 188의 파생형에 관해서는 몇 가지 제안이 있었다. 램제트와 로켓 엔진을 병용해 전투기와 정찰기로 쓰자는 방안이 먼저 나왔다. 공기 흡입구를 쐐기 모양으로 바꾸는 것 또한 심각하게 고려되었다. 하지만 1964년에 접어들자 공군성으로터 모든 계획을 공식적으로 중단한다는 발표가 흘러나왔다. XF926의 마지막 비행은 1964년 1월 12일에 실시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든 비용은 2,000만 파운드 - 2020년 기준 3억 6300만 파운드로 한화 5,546억원 - 에 달해 현재까지 영국이 만들어낸 실험기의 개발 비용으로는 가장 비싼 것이다. 비행 가능한 2기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부품 동류전환에 의해 비행 가능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1966년 4월, 단 2대만 남겨진 타입 188은 사격용 표적으로 쓰기 위하여 2대 모두 에섹스주 슈베리니스 마을(Shoeburyness)에 있는 실험 입증 기관(Proof and Experimental Establishment)으로 옮겨졌다. XF923은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지만, 다행히도 XF926은 1972년에 코스포드 RAF 박물관에 넘겨져 일반에 전시되었다. 대영제국이 항공기술 대국의 절정기에 올라섰을 때 처음으로 쓰디 쓴 실패를 안겨 준 문제작은 지금도 이곳에서 은은한 광채를 뿜으며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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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A T A
형식 / 명 칭 쌍발 단좌 실험기 / Bristol Type 188
전장 / 전폭 / 전고 23.67 m / 10.69 m / 3.65 m
익 면 적
탑승인원 / 초도비행 1명 / 1962년 4월 14일
공허중량 / 임무중량 불 명
최대이륙중량 40,000 파운드
동 력 드 해빌랜드(De Havilland) 자이론 주니어(Gyron Junior) PS.50 
/ 터보제트 엔진 X 2기 (각 10,000 ~ 20,000 파운드)
최 대 속 도 2,300 km/h (마하 1.88)
순 항 속 도 불 명
항 속 시 간 48분
상 승 한 도 11,000 m 이상
상 승 률 불 명
무 장 없 음
전 자 장 비 데이터 계측 및 전송 시스템
비 고

3대가 제작되어 1대는 보존 중

  • profile
    뱅기 2020.06.08 08:35

    항공기 형상이 SR-71을 많이 닯았네요. 오히려 비슷한 기능을 해야만 했던 SR-71에 많은 영향을 줬을듯 합니다. 

  • profile
    쿵디담 2020.06.08 12:58
    그렇죠? 꼬리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보면 꽤 흡사합니다 ^^
    기능이 빚어낸 디자인이라서 저렇게 수렴진화하는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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