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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rschmitt-me-163-komet.jpg


# 나치의 실패작


2차 세계대전은 현대전에서 전략폭격이 품고 있는 위력과 중요성을 입증해보였고, 전후에 냉전이 시작된 후에는 핵무기로 무장한 폭격기 부대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면 전쟁의 승패는 고사하고 국가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위협을 받게 되어, 강대국의 공군들은 적절하고 믿을 만한 요격 수단을 찾아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나치 독일은 전쟁 중에 공습 한 번에 도시가 하나씩 지워지는 가공할 전략폭격을 뒤집어 쓰게 되자 이전부터 실험해오던 로켓 요격기를 실전에 투입했다. 루프트바페는 1944년부터 메서슈밋 Me 163(Messerschmitt Me 163)과 바쳄 Ba 349(Bachem Ba 349)와 같은 로켓 요격기를 만들었는데, 이 기체들은 발터 로켓의 강력한 추진력을 이용해 기존의 레시프로 전투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있었다. 이런 요격기가 제대로 작동해준다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적 폭격기가 목표에 닿기 전에 차단하고 요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신병기로부터 처음 공격받아 본 연합군 조종사들의 경험담은 연합군의 정보당국이 취합해 그 성능을 평가하게 되는데, 이 작업은 특히 영국 공군이 더 열심이었다. 이들은 정보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신무기에 쓰인 기반 기술을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전간기에 조약의 그물코를 피할 목적으로 집중 육성시킨 탓에 진보된 독일의 로켓 기술은 종전 후 승전국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연구되었는데,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공군의 주도하에 로켓 이륙보조장치(RATOG)로 알려진 단거리 이륙과 높은 고도까지 단숨에 상승하는 목적으로 액체 추진 로켓 부스터의 개발 프로그램을 서두르기로 작정했다. 1946년에는 신형 로켓 모터인 드 해빌랜드 스프라이트(de Havilland Sprite)암스트롱 시들리 스날러(Armstrong Siddeley Snarler)의 본격적인 시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각각 5,000파운드와 2,350파운드의 추력을 내는 이 로켓 부스터들은 서로 다른 추진제를 이용하고 구조도 달랐다. 스날러가 인체에 무해한 메탄올(Methanol)과 액체산소, 물을 이용하여 점화시간을 늘리는 동안 스프라이트는 고농축 과산화물(HTP)과 촉매를 써서 강력한 추력을 짧게 제공했다. 1950년이 밝아오자 두 엔진 모두 실제로 시험비행을 시작하는 단계까지 작업이 진전되었지만, 이 시기부터는 기존의 제트 엔진에 연료를 추가 공급, 연소시켜 추력을 대폭 늘려주는 신기술인 리히터(Reheater : 애프터버너의 영국식 명칭)가 실용화되고 있어서 과연 쓸모가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켓 모터는 제트 연료와는 다른 전용 연료를 써야하고 꺼진 후에는 필요없는 무게만 늘리게 되므로 페이로드에 제한이 큰 요격기에 선택하면 항속거리와 속도가 줄어들 것이 쉽게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1.png


# 발등에 떨어진 불


1949년 8월 29일, 마침내 서방 측이 모두 두려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련이 세미팔라틴스크(Семипалатинск)에서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인 RDS-1(РДС-1)을 터뜨린 것이다. 1951년이 되자 소련은 무서운 기세로 전략폭격기 부대의 규모를 늘리고 있었고, 새롭게 입수된 첩보에 따르면 수소폭탄과 그것을 실어 나를 제트 전략폭격기 개발도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공군성(Air Ministry)은 이런 국가적인 위협에 직면하자 1951년 5월부터 날아오는 핵폭격기까지 빠르게 상승해 막아낼 능력이 있는 로켓 요격기 개발을 제안하는 작전요구사항 301호(GOR.301)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2월에 극비리에 국내 항공기 메이커에만 공개된 이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이 로켓 전투기는 2분 30초 만에 6만 피트(18,300m)까지 상승하는 가공할 스피드를 낼 수 있어야만 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제트 엔진만으로는 불가능한 요구였다. 


​GOR.301에 제시된 이런저런 성능 요구들은 거의 모두 속도와 상승률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가상 적국인 소련 폭격기들이 빠르게 속도와 항속거리를 끌어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소련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던 1950년대 초,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인들이 1960년대가 다가오기 전에 8만 피트에서 마하 2까지 낼수 있는 초음속 폭격기를 실용화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상이 사실이건 아니건, 핵병기에 타깃이 된 영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런 황당한 성능을 당대의 전투기가 내려면 운용이 복잡한데다 불편하며 체공시간도 짧고 비용이 많이 들고, 결정적으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로켓 요격기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GOR.301의 탄생은 버려진 아이디어까지 다시 끌어올 만큼 다급해진 국제 정세가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GOR.301 프로그램에는 브리스톨, 블랙번, 쇼트 등 6개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심사 결과 비행정의 명가로 이름을 떨치던 손더스 로우(Saunders-Roe) 사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폭격기 중 하나인 애브로 랭커스터를 빚어낸 애브로(Avro) 2개사만 시제기 제작에 참가하기로 결정되었다. 애브로 설계팀은 즉시 규격과 요건에 들어맞는 차세대 로켓 요격기의 설계에 착수했고, 이것은 애브로 720(Avro Type 720) 설계안으로 정리되게 된다.


라이벌 후보였던 손더스 로우 SR.53


301 요격기 계획은 고공을 날아 빠르게 접근해오는 폭격기를 영국 상공에 닿기 전에 마중나가 차단해야만 했는데, 그러려면 적 폭격기 보다 최소한 1.5배는 더 빨라야하고 초당 122m라는 예외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가져야만 했다. 말하자면 이 전투기는 2차 대전에서 루프트바페가 실전에 투입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던 코멧과 개념적으로 완전히 같았고 운용 방식도 흡사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처음에 GOR.301은 대차 위에 실려서 이륙하자마자 바퀴를 분리시키고, 그대로 가속해 급상승하여 목표를 공격한 다음에는 연료가 고갈된 상태에서 활공해 동체 내부에 접혀 있던 썰매를 꺼내 착륙하는 방식을 전제로 설계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명한 항공역사가인 데릭 우드(Derek Wood)에 따르면, 손더스 로우 스탭들은 아무런 동력없이 활공만으로 귀환하는 비행이 위험을 동반하고 운용비를 높이게 될 원흉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냈고, 다른 대안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신개념으로 제안한 방식을 논의하기 위해 빅벤이 마주보이는 공군성 건물에 직접 방문했는데, 그것은 요격기의 귀환 코스에 여분의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조 제트 엔진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공군성은 이 개선된 개념에 썩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고, 1951년 5월에는 새롭게 수정된 요구사양서가 사업 참가자들에게 회람으로 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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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 변경과 선정


이 요격기가 원래 규격에 의해 요구되는 성능을 실현하도록 완성된다면 대기가 거의 희박해서 제트 엔진이 작동하지 않는 10만 피트(35,000 m)의 초고공까지 상승해 적 폭격기를 위에서 덮쳐 공대공 로켓을 일제 사격하여 격퇴한 다음, 수십 km 떨어진 비행장까지 무동력으로 활공해 착륙해야만 했을 것이고, 착지한 뒤에도 자력으로는 움직이지 못해 지상 차량에 견인되어 격납고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공군성이 개정하고 국방부가 추인한 새 요구사양 OR.337은 1952년 12월 12일에 손더스 로우와 애브로에게 다시 전달되었고, 이때부터 보조 동력인 터보제트 엔진의 추가가 명시적으로 규정된 요건이 되었다. 이 보조 엔진은 전투를 마친 요격기가 기지로 다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해야만 하고, 작으면 작을수록 좋았다. 새로운 요구사항에는 그동안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적외선 유도 공대공 미사일을 무장에 포함시키라는 내용도 더해졌는데, 원래의 요구 조건에 따르면 동체에 수납되는 구경 2인치 무유도 로켓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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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익 요격기의 선구자


이 요격기는 미국의 컨베어 XP-92와 애브로 기술진들이 낳은 벌컨(Avro Vulcan) 폭격기와 함께 델타익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동체와 날개는 얅은 두랄루민 외판 2장 사이에 허니컴 구조물을 삽입해 겹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익근부가 매우 큰 삼각날개의 특징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구조 강도가 아주 높았는데, 계산상으로는 15G까지도 충분히 견디는 수준이었다. 주엔진은 8,000파운드(36 kN)의 추력을 생성하는 암스트롱 시들리 스크리머(Armstrong Siddeley Screamer) 엔진이며, 액체 산소를 산화제로 쓰고 휘발성이 낮고 인화점은 높아 안정성이 좋은 등유(kerosine)를 연료로 이용했다. 보조 엔진은 경쟁 후보인 SR.53과 마찬가지로 추력 1,750파운드(7.78 kN)의 암스트롱 시들리 바이퍼(Armstrong Siddeley Viper) 터보제트 엔진 1기를 장착했으며, 애브로 설계안은 기수 아래에 설치된 에어인테이크로 연소에 필요한 공기를 흡입하게끔 고안되어 있었다. 이 요격기는 적외선 유도 공대공 미사일인 드 해빌랜드 파이어스트릭(de Havilland Firestreak)을 각 날개 아래에 1발씩 2발을 장착할 예정이었는데, 기관포 같은 고정 무장의 탑재는 고려되고 있지 않았다. 


1953년 5월 5일, 군수성(Ministry of Supply)에서 열린 설계 자문 회의는 손더스-로우 SR.53에 초점을 맞춰 토론이 오갔고, 3일 후에 손더스-로우는 시제기를 1대가 아닌 3대를 납품해달라는 정식 계약이 접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양을 만족시키기 위한 요격용 미사일에 쓸 연료와 모터 조합에 대해서 RAF와 항공성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탓에, 경쟁 후보인 애브로 720에 대해서도 나중에 개발 계약으로 이어질 시제기 2대 인도에 관한 발주를 정식으로 넣게 된다. 하지만 1953년에 9월부터 애브로 720 프로젝트와 SR.53 프로젝트 모두 비용 절감을 위해 부처 내에서의 전반적인 감축 이행 요구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정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프로젝트의 추진력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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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

 

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1956년 12월, 애브로 720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새로 개발된 스크리머 엔진이 성공적으로 비행 시험을 완료했다고 보고되었다. 이 엔진은 스날러 엔진에 비해 3배 이상 추력이 향상된 8,000파운드급의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더 확장되고 무거워진 시제기의 중량을 너끈히 버틸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기체 자체의 개발 작업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956년까지 프로토타입 1호기가 사실상 완성되었다고 보고되었고, 애브로 기술진들은 라이벌인 SR.53보다 1년이나 앞서 비행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가 어느 때인가. 제트 엔진의 진보 스피드가 눈부시던 그 당시, 롤스로이스 에이본(Rolls-Royce Avon) 시리즈는 꾸준히 파워를 향상시켜 RA.28에 와서는 1만 파운드의 추력을 달성했고, 1952년 10월에는 최초의 터보팬 엔진인 롤스로이스 콘웨이(Rolls-Royce Conway)의 생산형이 출시되었는데 이런 제트 엔진들은 로켓 모터 보다 더욱 강력했다. 당연히 영국 공군은 채택을 망설이게 되었고, 결국은 애브로 시제기가 완성되더라도 손더스-로우 후보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교 테스트로 우열을 가리려는 의도를 갖게 된다. 이런 공군의 의향으로 인해, 애브로 720 개발진들은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애브로 직원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악재가 겹치게 된다. 1956년 3월, 애브로 720에 동력을 공급하기로 예정된 스크리머 로켓 엔진의 양산이 취소되면서 이 요격기는 치명타를 얻어맞게 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83°C에서 끓어버리고 화재 위험성이 높은 액체산소를 일반적인 비행장의 운용 환경 내에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공식적 우려가 스크리머의 취소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제아무리 먼저 완성되고 고성능이 예상된다하더라도, 엔진을 잃어버린 애브로 720은 채택될 수가 없었다. 


Armstrong Siddeley Screamer.jpg


# 프로젝트 캔슬


국방부가 개발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더 큰 지연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SR.53을 선호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요격기에 사용된 산화제로 과산화수소를 사용하는 드 해빌랜드 스펙터(de Havilland Spectre) 엔진이 스크리머의 액체 산소 보다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전용 연료의 개발비도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크리머는 원래 쓰이기로 예정했던 스날러와는 달리 등유를 연료로 쓰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당시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던 월터 몽튼(Walter Monckton : 1891~1965) 경은 법조인 출신의 관료여서 하루빨리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보직에서 벗어나기만을 원했을 뿐, 공군성의 문제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애브로 사가 공식적인 중지 권고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서신을 받았을 때, 애브로 720은 지상에서 구조 시험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그 원형기는 스크리머 엔진이 장착되지 않았고, 주날개는 포트 윙(port wing : 좌측 날개)만 붙여져 있었지만 엔진만 도착하면 곧바로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택싱을 하는데 몇 달이면 충분했다. 항공 작가 배리 존스(Barry Jones)에 따르면, 일련 번호 XD696이 그려진 시제기를 날개가 붙여진 왼쪽에서 촬영된 사진을 완성된 프로토타입이라고 기록한 자료는 전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애브로 720은 이 단계까지 설계되고 제작되는데 10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고, 스크리머 엔진은 65만 파운드의 개발비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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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브로 벌컨과 더불어 애브로 720, 그리고 다쏘 미라주 III와 같은 기종들이 선보인 델타익을 영국이나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기술을 발전시켜 재탄생시킨 것이라는 논조의 주장이 흔히 제기되는데, 결과만 놓고 먼저 말한다면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랠프 쉭(Ralph H. Shick)과 프랭크 데이비스(Frank Davis), 아돌프 번스타인(Adolph Burnstein) 같은 공기역학 전문가들이 델타익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풍동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영국은 그보다 더 빨리 랭커스터 폭격기의 아버지 로이 채드윅(Roy Chadwick : 1893~1947) 경과 애브로 720을 고안한 스튜어트 데이비스(Stuart Duncan Davies : 1906~1995) 같은 선구자들에 의해 후퇴익 이론을 더 진보시킨 꼬리가 없는 삼각형 날개를 먼저 선보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미라주 전투기를 탄생시킨 마르셀 다쏘(Marcel Dassault)는 바로 이 애브로 720의 기술자료를 접한 후에 델타익 전투기에 관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D A T A
형식 / 명 칭 시제 단좌 요격기 / Avro Type 720
전장 / 전폭 / 전고 12.88 m / 8.31 m / m
익 면 적 15.4 m²
탑승인원 / 초도비행 1명 / 없음
공허중량 / 임무중량 3,543 kg / 연료 소모에 따라 상이
최대이륙중량 7,972 kg
동 력 Armstrong Siddeley Screamer (추력 8,000 lbf) / Armstrong Siddeley Viper ASV.8 (추력 1,750 lbf)
최 대 속 도 2,120 km/h (고도 12,200 m)
순 항 속 도 ?
항 속 거 리 ?
상 승 한 도 30,480 m
상 승 률 12,200 m까지 140초
무 장 드 해빌랜드 파이어스트릭 공대공 미사일 2발
생 산 수 1대
비 고

설계 : 스튜어트 D. 데이비스

  • profile
    뱅기 2020.05.30 10:55

    이후 Convair의 B-58 Hustle, F-102 Delta Dagger와 F-106 Delta dart 까지 공기 흡입구를 제외하면 애브로와 닯았네요. 애브로가 할아버지 정도 될 듯 하네요.

  • profile
    쿵디담 2020.06.08 13:01
    제대로 보신겁니다! 특히 델타 대거하고 프랑스의 시제 델타익 전투기 듀랑달은 정말 쏙 빼다 닯았지요. 물론 이게 먼저 나온 디자인입니다.
  • profile
    이골 2020.05.31 21:53

    기체형상에서 여러가지 기종들이 보이네요. 일단 미라쥬 시리즈하고 너무나 비슷한 형태이고 캐나다에서 갑툭튀한 CF-105의 모습도 약간 보이는듯 합니다.

  • profile
    쿵디담 2020.06.08 13:01
    크..... 애브로 애로우! 가장 거대한 델타익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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